[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2> 유권자 판단 흐리는 사이버험담
정치인은 악플의 단골 피해자다. 온라인엔 정치인들을 겨냥한 각종 인신공격성 글과 거짓 주장이 넘치지만, 이들은 공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특히 선거기간에 나오는 악플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넘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폐해가 매우 크다. 류효진 기자

선거철이 되면 정치 뉴스가 쏟아지고, 댓글도 급증한다. 뉴스 댓글란은 정확하진 않더라도 여론 추이가 드러나는 창(窓)인 동시에, 특정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 효과도 발휘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정보원이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에 유리한, 이와 반대로 2017년 대선 땐 ‘드루킹’이 더불어민주당에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꾀하며 각각 조직적으로 댓글 조작에 나섰던 이유다. 민의(民意)를 왜곡하려 한 것이다.

선거와 관련한 악성 댓글(악플)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피해자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문에서 그 폐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져도 임박한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오도해 결국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일보가 살펴본 최근 5년간 악성 게시글ㆍ댓글 관련 확정 사건 판결문 1,401건 가운데 선거법 위반 사건은 총 17건이었다. 대부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함께 적용됐는데, 이 중 징역형 선고는 4건(실형 1건, 집행유예 3건)으로 나타났다. 벌금형과 무죄 판결은 각각 12건과 1건이었다.

◇악플 게시 시점ㆍ낙선 의도 여부가 판단 기준

판결문 분석 결과, ‘선거 악플’ 사건에서 법원의 핵심 판단 기준은 △악플 게재 시기 △특정 후보자 낙선 의도 여부 등 두 가지로 파악됐다. 명예훼손은 물론, 선거법 위반에도 해당할 땐 더 중한 처벌이 내려졌다.

2017년 5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게시물 94건을 올린 방모(52)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4개 이상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하던 방씨는 2016년 11월~2017년 4월 “종북좌파 세계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은 북한 인민회의 흥남지부장의 아들 문재인” “유병언의 파산관재인 문재인” 등 허위 사실을 글에 가득 담았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1조원 환전을 시도했다’는 내용의 동영상도 SNS에 게시했다.

서울북부지법은 2018년 10월 “SNS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친구관계인 사람이 수만명인 만큼, 방씨가 대선을 앞두고 게시한 글의 전파력은 상당했을 것”이라며 징역 10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어 “(게시물의) 사회적 파급력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낙선’ 목적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반면 악플 게시 시점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받은 사례도 있다. 전북 지역에 사는 A씨는 “문재인은 호남극혐 환자임. 청와대 근무 시절 호남인은 청소부로도 안 씀” “문재인 금괴설은 낭설이 아닐 것” 등의 허위 댓글을 25차례 올렸다. 1심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명예훼손 혐의만 인정해 벌금 150만원으로 감형했다. 악플이 오른 2016년 2~3월엔 문 후보의 19대 대선 출마를 예상할 수 없었던 만큼, “허위 비방은 맞지만, 낙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순 없다”는 판단이었다.

◇‘우회적 허위사실 암시’도 선거법 위반

선거 후보자에 대한 허위 사실 암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2017년 2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 B씨는 누구나 자유롭게 그 내용을 편집ㆍ수정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접속,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문재인ㆍ이재명 당시 예비후보자들의 페이지 문구를 고쳤다. 당초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라고 적혀 있던 정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라고 바꾼 것이다. 사진도 ‘인공기’가 표시되도록 했다.

B씨는 “문재인ㆍ이재명 후보자의 통일관이 북한과 동일하다고 생각해 수정했다”고 항변했다. 주관적인 의견 피력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의견이나 표현을 빙자해 우회적으로 허위 사실을 암시해도 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 B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의 구체성을 지닌 사실 적시라면,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는 얘기였다.

◇공무원의 ‘선거 악플’ 게시 행위는 더욱 엄벌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이 특정 후보자에 대한 ‘악플’을 남겼을 땐 더욱 엄벌이 취해졌다. 2014년 6ㆍ4 지방선거 한 달 전, 서울시청 7급 공무원 김모씨는 “자기 자식 때문에 우는 놈,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가서 봐라”라면서 정몽준 당시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를 비방하는 글(선거법 위반)을 페이스북에 썼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허위 사실로 비난(명예훼손)하기도 했다. 두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 김씨에겐 벌금 250만원형이 선고됐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대해 매우 악질적인 게시물을 올린 경찰 공무원도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인천지법은 문 후보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간첩’ ‘빨갱이’ 등으로 지칭한 것은 물론, 재벌 후원을 받는 부패 정치인처럼 묘사한 게시물을 올린 경찰 관계자 C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 분석 대상 판결문 17건 가운데 벌금형이 내려진 12건 중 최다 벌금 액수였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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