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온라인 교육 경험 없고 콘텐츠 제작 기자재 부족
“스마트폰으로 찍는 수준” 4차례 개학 연기에도 준비 부실
“전국 고3 학생 50만명을 가르치는 교사가 2만명에 달합니다. 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위한 각종 제작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콘텐츠 만드는 일을 고작 8일 안에 끝내라는 말이죠.” 31일 수도권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 A씨는 “(온라인 개학) 소식을 듣고 학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라며 “지난 주부터 콘텐츠 제작에 나섰지만, 당장 학교에 기자재가 없어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찍는 수준이다”라고 불안해했다.
이날 교육부가 9일부터 순차적인 ‘전국 온라인 개학’을 발표하면서 학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정규수업을 원격교육으로 대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대부분 학교가 내주부터 온라인수업을 처음 해보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부는 1일부터 모든 교사가 출근해 온라인 수업 준비를 시작하도록 했다. 원격교육 준비점검팀을 신설해 학교를 지원하고 29만명으로 추산되는 중위소득 50%이하 가정의 학생에게 스마트기기와 인터넷을 지원한다. IT환경이 부족한 산간지역 가정 학생은 학교 교실과 컴퓨터실 등을 활용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개학을 네 차례나 미룰 때까지 원격수업 준비가 부실했다는 지적에 교육부도 할 말은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3월 2일 개학(연기를 발표함)과 동시에 전 학급에 온라인 학급방을 개설하라 했고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e-book을 통해 교과서를 제공하는 등 원격수업 계획과 지침을 마련해 현장과 소통해 왔다. 단계적으로 계획은 있었다”고 말했다. 수 차례 개학 연기를 발표하며 일선 학교에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라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온라인 개학과 관련한 인프라 구축계획이나 관련 예산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방역 대책 세우기도 바쁜 일선 학교가 온라인 수업까지 준비하기는 어려웠다는 지적은 남는다. 교육부는 지난 25일에서야 초·중·고등학교의 원격수업을 수업시수로 인정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한 정부 ‘원격수업 운영 기준안’에 따르면 온라인수업 방식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 △동영상 강의 등을 통한 일방향 수업 △과제형 수업 등으로 구분된다. 교육부는 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e학습터’, EBS의 ‘온라인교실’ 등 학습관리시스템을 사용해 실시간 학생 출결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BS 강의, 유튜브 콘텐츠 등을 활용해 학습진도를 나가면서 쌍방향 수업이나 과제수업 등을 병행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관련 인프라와 경험이 미미한 현실에서 ‘온라인 개학’이 전국 동시에 시작되면 각종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 뻔하다. 실제 개학이 수 차례 연기되면서 e학습터와 EBS 온라인교실 가입자가 폭증해 서버가 다운된 바 있다. 문제가 지적되자 교육부는 130억원을 들여 이 두 사이트의 서버를 증설한다고 밝혔다.
학교 인프라와 교사 ·학생들의 경험을 감안할 때 온라인 수업 자체를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의 또 다른 인문계고등학교 B교사는 “중고등학생 대부분은 인터넷 사용량이 적은 스마트폰 약정 할인상품에 가입해 단순 검색하는 것조차 싫어한다”라며 “하루 8시간씩 동영상을 끝까지 보고, 출석체크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온라인 개학’ 발표 직후 교사 단체들은 “분명하고 실현 가능한 대책을 제시하라”(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현재 학교 현장은 온라인 개학에 관한 기초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며, 교사 개인이 수업 장비들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각종 온라인 도구의 안정성 점검, 학교의 통신 환경 구축과 웹캠 등 기자재 지원, 저작권 문제, 온라인 시스템 활용 및 콘텐츠 제작을 위한 신속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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