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 6일 우여곡절 끝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하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2019년 12월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간 합의로 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해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사위에서는 법리 검토의 필요성 때문에 보류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과관계 추정조항 때문이었다.

현행 특별법은 제5조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체 피해가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 그 피해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상당한 개연성은 인정 기준으로서 다소 추상적이다. 더군다나 개연성은 결국 법원이 판단하게 되는데, 법원은 이를 쉽게 인정하고 있지 않다.

실제 현실은 피해자에게 무척 버거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과 인과성을 인정해 구제 대상으로 정한 피해 질환은 폐질환, 천식 등 8종이다. 그런데 이는 피해자들이 진단받은 것으로 신고된 질환 일부에 불과하다. 실제로 현재 피해 신청자 6,700여명 중 3,000여명 이상은 아직 구제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은 이러한 피해 구제와 손해배상 현실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 현행 추정조항을 개정하게 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 노출’ 사실과 ‘노출 이후 질환이 발생 또는 악화’한 사실을 증명하면 인과관계는 일단 추정되고, 기업이 해당 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인과관계는 최종 확정되게 된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질환에 아무런 제한을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기업이 과중한 증명 부담을 지워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법사위가 개정안 통과를 유보한 것이다. 거듭된 논의 끝에 개정안 원안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과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는 질환만 인과관계를 추정받을 수 있도록 수정, 통과됐다.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원안보다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판례 법리보다 매우 진전된 것임은 틀림없다. 대법원은 고엽제 소송, 담배 소송, 대기오염 소송 등에서 일관되게 유해물질에 노출과 피해 질환 사이에 ‘역학적 상관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여 법원은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 시기, 노출 전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 이른바 ‘플러스 알파’를 추가로 증명해 그 위험인자에 의해 피해 질환이 유발되었을 개연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개정안이 적용된다면 지금까지 정부의 역학 연구 등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상관성이 확인된 질환은 인과관계 추정을 받을 수 있어 피해자의 증명 부담은 확연히 줄 것이다. 피해 구제가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지려면 개정안에 발맞춰 정부의 구제 행정의 질을 보다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피해인정 결정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역학적 상관관계 인정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근거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태현 강원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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