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엄창섭의 몸과 삶] 해부학적 자세 – 환자가 기준이다

입력
2020.03.31 18:00
수정
2020.03.31 18:52
25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방향을 나타내는 데 오른쪽, 왼쪽이란 표현을 쓴다. 애기들은 생후 1~3개월이면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 수 있지만 오른쪽 왼쪽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6~7세가 되어야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보다 늦은 8세 정도가 되어서다. 그렇지만 별 혼란이 없이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

필자의 경우를 회고해 보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오른쪽 왼쪽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좀 둔한 편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구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오른쪽 왼쪽을 가리는 데 별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제식훈련을 하면서 ‘우향우’ ‘좌향앞으로가’와 같은 말을 들었다. 운동신경이 둔한 몸치인 나는 중학교 시절 내내 우향우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라는 것인지 왼쪽으로 돌라는 것인지 헛갈려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이들 용어가 영어로 바뀌었다. ‘라이트’ ‘레프트’... ‘오른’이 ‘우(右)’고 그게 ‘라이트(right)’다. 그렇게 쉬운 것도 헷갈리냐고? 손에 장을 지지는데 필자 말고도 헛갈려 한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오른쪽 왼쪽을 가지고 한 번 더 혼란을 겪었다.

해부학은 의학에 입문하면서 처음 배우는 과목이다. 몸에 대한 구조를 모르고서야 환자를 대할 수 없기 때문에 해부학은 의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부학 공부는 어쩌면 간단하다. 거의 대부분의 구조나 용어가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무조건 외우면 된다. 외워야 할 것이 많아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고 그만큼 힘들다. 의사가 된 후에도 해부학 소리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해부학적 지식들이 몸 속에 녹아 들어 매일매일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되는 단단한 기초가 된다.

해부학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 ‘해부학적 자세’와 사람의 여러 부위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면과 방향들이다. 해부학적 자세에서 몸을 앞뒤로 나누는 관상면, 좌우로 나누는 시상면, 위아래로 나누는 수평면을 상정하여 몸의 부위나 구조의 위치, 그들 간의 관계를 명확하고 통일되게 표현한다.

해부학적 자세는 “똑바로 선 채로 시선은 앞을 보고, 팔은 손바닥이 앞을 향하게 하여 몸에 자연스럽게 내린 자세”를 말한다. 이 자세는 1923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해부학회 용어위원회에서 사람 어른뿐 아니라 발생과정(태아)이나 진화과정(동물)에 있는 개체에서도 방향이나 관계를 똑같이 표현할 수 있도록 기준을 통일해야 한다는 발생학자, 비교해부학자, 수의학자들의 의견을 의료계에서 받아들여 정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흔히 상대방의 오른쪽을 가리키면서 왼쪽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한다. 자신의 눈에 왼쪽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환자의 환부를 설명하면서 왼쪽이라고 잘못 이야기한다면 아주 큰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부학은 몸의 구조를 익히면서 생각의 중심을 자신으로부터 상대방, 환자에게 옮기는 연습을 시키는 과정이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을 때 잠꼬대로라도 ‘오른쪽’이라고 하면 환자의 오른쪽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보름 남았다. 이번 선거에도 정말 많은 후보가 정치에 꿈을 두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중에서 가장 적격인 사람들을 어떤 틀과 기준으로 골라낼 수 있을까?

몸을 기술하는 기본 틀인 해부학적 자세는 여러 집단이 의견을 모아 정한 것이다. 선거의 틀인 선거제도도 다양한 집단의 합의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선거제도도 변칙적이기는 하지만 ‘4+1 협의체’에서 합의를 통해 만들었다. 그런데 선거를 실시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망가뜨리는 행태를 보면서 제대로 된 후보자들을 걸러내는 틀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제도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사람들을 뽑게 하려는 고심의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자기 편이 더 뽑히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까하는 관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서 있는 직립 자세에서 손등은 몸의 가쪽을 향하고 있지만 해부학적 자세에서는 몸의 뒤쪽을 향하고 있다. 손등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생각의 기준을 나로부터 환자로 옮기지 못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굳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끌고 오지 않아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하는” 것이 정치의 기준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상식인데, 그 상식을 지키는 게 제일 어렵다.

이번 선거에서는 가장 상식적인 후보자에게 나의 귀중한 한 표를 주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누구일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