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외교문서 공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에서 총영사로 일하던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방미를 위해 현지 재야인사에게 시위 자제를 요청했던 문건이 확인됐다.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1989년 외교문서에는 노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반기문 당시 주(駐) 미국대사관 총영사는 노 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교민들과 만나는 리셉션 행사를 5일 앞둔 89년 10월 11일 현지 인사인 최성일 박사를 만났다. 그는 리셉션 초청장을 전달하면서 “대통령 방미 중 반대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박사는 뉴욕 호바트윌리엄스미스대 정치학과 전임교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탰던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돕고, 미 의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도 최 박사였다.
당시 국내 언론은 교민사회가 노 전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기사로 채워졌지만, 현지에서도 반정부 목소리를 우려한 흔적이 나타난다. 현지 공관들은 정부에 반대하는 교민단체도 리셉션에 초청할 것인지를 본부에 문의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방미 때도 반대 시위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시 백악관 의전장을 지낸 셀와 루스벨트의 저서 등을 통해 전해졌다.
최 박사는 리셉션 참석은 못한다면서도 반대 시위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정치 상황에는 김대중 총재에게도 책임이 30% 정도 있다’는 이유를 댔다고 당시 전문에는 나와 있다. 또 시위 자제와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요청에는 ‘한청련 측은 요즘 자신들을 기성세대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그들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다’고 언급했다고 나와 있다.
또 89년 10월 방미 과정에서 현지 공관은 노태우 대통령이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외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면담하는 일정을 조율했고, 현지에서 복식 테니스 경기를 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 딸이 테니스를 치는지 문의를 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기소 문제와 관련 미국 현지 언론인을 면담한 내용도 외교문서에 나와 있고, 의회연설 후 미국 의원들의 반응도 주요 관심사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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