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국교 수립 위해 대규모 경제협력… 1989년 북방 외교 비화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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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권 국교 수립 위해 대규모 경제협력… 1989년 북방 외교 비화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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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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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989년 생산 외교문서 공개

1989년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가 버지니아주 윌리엄스 버그의 랭글리 공군기지에 도착해 교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9년 노태우 정부는 공산주의권 동유럽 국가와의 수교 등 ‘북방외교’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내에선 87년 이후 분출된 노동운동 등 민주화 물결도 거세지는 상황이었다.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89년 외교문서 약 24만쪽에는 당시 외교 현장 상황이 오롯이 기록돼 있다.

◇6억5,000만 달러 경협 제공이 헝가리 수교 조건

한국은 1989년 2월 동유럽 국가 중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했다. 이를 위해 1억2,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한국이 헝가리와 수교 협상 과정에서 거액의 경제협력 자금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총 규모가 6억5,000만 달러에 이르고 은행 차관이 필수조건이었다는 점은 처음으로 공개됐다.

1988~1989년 외교문서를 보면 한국과 헝가리는 1988년 7월부터 두 차례의 협상을 가진 뒤 8월 12일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그 이후 수교 교섭에 들어간다’는 ‘합의 의사록’에 서명했다. 이 합의의사록에는 ‘한국 정부는 헝가리 측에게 미화 6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아래의 경제협력을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은행차관’ 지원 약속의 50%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이 조건이었다.

협상팀이 손으로 쓴 보고서에 따르면 88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1차 협상에서 헝가리가 최초로 요구한 경협자금은 15억 달러였다. 한국은 4억 달러로 맞섰다. 이후 헝가리는 10억 달러, 8억 달러로 요구액을 차츰 낮춘 것으로 파악된다.

88년 12월 14일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은행이 헝가리 중앙은행에 1억2,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고, 한국은 이듬해 2월 1일 헝가리와 수교했다. 합의 의사록에 따르면 한국이 헝가리에 제공한 은행차관 외 나머지 경제협력은 △직접투자 자금지원 2억 달러 △연불수출(일종의 외상수출) △전대차관 2,500만 달러 △대외경제협력기금 5,000만 달러 등이다.

정부는 협상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헝가리의 경협 제공 요구에 응할 시 예상되는 ‘다른 국가와의 수교 및 경협 확대 시 동종 요구 가능성’을 염려했다. 실제로 한국은 89년 11월 폴란드와 수교하면서도 4억5,000만 달러의 경협을 제공해야 했다.

◇‘노동운동 격화할라’ ILO 가입 우려했던 정부

89년은 노동운동의 격변기였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등 89년엔 노동조합 조직률이 19.8%에 달했다. 이러한 국내 정세로 인해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두고 갈팡질팡했던 과정도 외교문서에 담겼다.

한국은 82년부터 매년 ILO에 옵서버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가입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총회 참가 대표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이 반대하면 득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가입을 미뤘다.

그러나 막상 정부가 ILO 가입을 꺼린 이유는 노동운동 격화 우려였다. 국내 노동문제가 국제 이슈화할 가능성이 있고, ILO 협약이 투쟁의 명분도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89년 12월 19일 ILO 가입 추진 대책 협의에서 노동부는 ‘추진 보류’ 건의를 검토했다. 당시 정부가 전교조, 공무원 노조, 전노협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ILO가 문제를 삼으면 ‘곤혹을 치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 국내법상 복수노조 금지 규정이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는 ILO의 지적이 나올 것도 염두에 뒀다. 이어 12월 27일 열린 관계부처회의에서도 동구권 관계 개선으로 득표 여건이 개선됐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청와대 총리실 노동부가 노사관계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결국 ‘보류’로 결정됐다.

회의 자료에는 “국내 노동문제에 대한 ILO 간여는 국내 정치ㆍ경제면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재야 진보 정치권이 국내 노동ㆍ사회 문제를 ILO를 통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렇지만 정부는 대외에는 “북한의 적극적 반대 책동이 예상되고 ILO 가입 요건이 워낙 까다롭다”라는 이유로 보류를 결정했다고 설명하기로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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