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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ㅋ” 무례한 표현? 비방? 법원서도 모욕죄 판단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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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ㅋ” 무례한 표현? 비방? 법원서도 모욕죄 판단 오락가락

입력
2020.04.01 09: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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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없는 악플 바이러스] <1> 혐오와 욕설 판치는 난장판 

“공황장애 있는 것 아니냐.”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면 모욕죄로 처벌을 받을까. 다른 사람 명의로 악성 비방글을 올렸다면, 피해자는 명의를 도용 당한 사람일까, 아니면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일까.

댓글과 게시글을 통한 명예훼손과 모욕 사건이 갈수록 확대되고 교묘해지면서 법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지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만, 무례한 표현일 뿐 모욕적 언사로 보기 어려우면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례한 표현과 모욕의 범위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탓에, 기준을 제시해줘야 할 법원 판결조차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6년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 접속한 A씨는 한 게시글에 시선이 멈췄다. 게시글은 카페에서 회원을 강제 퇴장시킨 B씨에 관한 것이었다. A씨는 이 게시글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자승자박, 아전인수, 사필귀정, 자업자득, 자중지란’이라는 댓글을 달면서 B씨를 비난했고, ‘공황장애ㅋ’라는 말까지 남겼다.

B씨는 ‘공황장애ㅋ’라는 말을 특히 문제 삼아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1ㆍ2심은 댓글을 남긴 맥락에 비춰볼 때 댓글이 B씨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경멸적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댓글을 ‘불쾌함을 주는 무례한 표현’ 정도로 보고 무죄를 선고해, 하급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해 제3자를 비방하는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도 논란거리다. C씨는 같은 학과에 다니는 D씨와 똑같은 닉네임으로 특정인에 대한 욕설 및 외모비하, 저속한 표현이 담긴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열흘간 5차례나 올렸다. 검찰은 C씨가 D씨의 닉네임으로 글을 올려 D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고, 서울북부지법은 C씨의 행위를 범죄로 보고 2016년 7월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수원지법은 다른 사람의 얼굴사진과 이름을 명시한 닉네임을 도용해 악성 댓글을 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E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E씨에 대해 형사처벌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2018년 5월 “타인에 대한 허위사실을 게시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를 사칭한 것은 맞지만, 피해자를 직접 비방한 행위와는 다르다는 취지다.

판결이 엇갈리자 대법원은 교통정리를 했다. 대법원은 “단순히 피해자를 사칭해 그 사람이 직접 작성한 글인 것처럼 게시글을 올리는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비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종길 대법원 공보관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타인사칭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해 처벌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행 정보통신망법으론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법적 공백이 발생한 이유는 온라인에서 타인을 사칭해 제3자를 허위로 비방하는 일은 과거엔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이라 처벌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방의 대상이 된 제3자만이 유일한 피해자여서, 정작 신분을 도용 당한 피해자는 법적 구제를 받을 길이 없는 셈이다. 법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함에 따라 악성 댓글이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에 다른 사람의 사진과 프로필로 가입한 뒤 명의자가 마치 문란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는데도 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있었다.

국회도 법적 공백은 인식하고 있지만, 입법은 요원한 상황이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이용해 사칭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안)’이 2016년 발의됐지만, 내달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자동 폐기될 전망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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