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심사로 거대 양당 꼼수에 면죄부… 소수정당 선거운동 역차별도 눈 감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 꼼수’에 거듭 면죄부를 줬다. 선관위는 지난 2월 전체회의에서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은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들어 “정당 지도부가 정치적 고려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ㆍ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을 불허하거나 당선을 취소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양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 절차에 대해 사실상 ‘겉핥기 심사’를 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27일 밤 선관위가 요식적 심사 끝에 내린 결론은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은 민주적 절차 상 문제 없음’이었다. 선관위가 비례정당 창당을 허용해 꼼수가 증식할 토양을 만들어 준 데 이어, 각종 편법 논란을 부른 두 당의 공천 과정도 승인한 것이다. 선관위가 ‘헌법ㆍ정당법ㆍ선거법에 입거한 선거 관리’라는 직무를 게을리한 결과, 21대 총선은 거대 양당과 ‘한 몸’인 양대 비례정당에 유리한 조건이 됐다.
◇‘민주적 절차 심사’ 단 하루… 정당마다 20분만에 심사
선관위는 후보자 등록일인 26, 27일 중앙위원회의를 열어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 38곳을 심사했다. 27일 후보 등록을 마친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등 29곳에 대한 심사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 3시까지 9시간 동안 이뤄졌다. 정당 1곳을 심사하는 데 걸린 평균 시간이 20분 미만이라는 얘기다.
심사 내용도 문제였다. 선관위원 7명은 각당이 미리 제출한 당헌ㆍ당규와 각당의 공천 심사 회의록을 대조하고, 후보들의 재산ㆍ병역ㆍ전과에 관한 증빙서류 등 필수 제출 서류가 제출됐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심사를 끝냈다. ‘민주적 절차’가 이뤄졌는지 판단할 유일한 근거는 회의록이지만, 신빙성을 확인할 길은 없다. 더구나 선관위는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비례정당 출현은 사상 초유의 사건인데, 선관위가 후보 등록일 이후에라도 면밀한 토의 과정 거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구체적 물증을 제시하는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선관위는 비례정당의 공천 과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비례당 찍으라” 꼼수 전략에도 손 놓은 선관위
거대 양당에 기울어진 선관위의 태도는 선거 관리에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법적으로 별도의 정당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사실은 한 몸’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이름값을 활용해 소수정당 몫인 정당 투표를 독식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다음달 2일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더불어시민당과 공동 출정식을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고, 통합당 역시 ‘지역구 투표, 정당 투표 모두 두 번째 칸(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찍으라’는 신호를 지지자들에 발신하고 있다. 소수 정당의 진입 문턱을 낮춰 국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끌어올리려는 취지로 개정된 선거법을 앞다퉈 훼손하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선관위는 최근 ‘정당 상호간 선거운동 가능 범위 사례’(선거법 88조)에 대해 “후보로 출마하지 않는 당 대표나 간부들은 다른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비례정당과 모(母) 정당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공동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순수’ 비례정당엔 기울어진 운동장… 소수당엔 제약만
거대 정당을 모회사로 두지 못한 소수정당들은 결과적으로 역차별을 받게 됐다. 선거법(79조)은 비례대표 후보의 공개 연설 및 거리 유세를 금지한다. 비례 후보는 유세 차량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거나 확성기를 쓸 수 없어 선거 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얘기다. 비례 후보는 같은 당 지역구 후보 유세에 동행해 육성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이에 따라 지역구 후보를 1명도 내지 않은 국민의당 비례 후보들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반면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 후보들은 모회사의 프리미엄을 누린다. 위에 언급한 선관위 해석에 따라, 민주당과 통합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선거운동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선관위가 마치 양당의 기득권 정치 관리위원회 같다”며 “온라인 공간에서 존재감을 알리는 것 이외엔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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