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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더도 말고 강원도 감자만 같아라

입력
2020.03.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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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화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강원도 감자 세일즈에 나선 최문순 강원지사. 최 지사 SNS 캡처
자신의 사화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강원도 감자 세일즈에 나선 최문순 강원지사. 최 지사 SNS 캡처

강원도하면 떠오르는 단어, 바로 ‘감자’다. 얼마 전 때아닌 감자 열풍이 불었다. 강원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판로가 막힌 농가를 돕기 위해 마련한 온라인 특판 행사의 인기가 예상외로 뜨거웠다.

한 상자(10㎏) 당 5,000원에 온라인 시장으로 나온 감자는 몇 분만에 수만 상자씩 팔려 나갔다. 불과 2주만에 무려 4,000톤이 판매됐다. ‘날개 돋친 듯’이란 상투적 비유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출을 꺼리던 소비자들을 겨냥한 온라인 판매 전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다. 만약 재고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4월 햇감자 출시와 맞물려 산지에서 폐기될 뻔한 것이었기에 농민들도 고마움을 전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온라인에선 감자를 사기 위한 대기 행렬을 두고 감자(포테이토)와 매표(티켓팅)을 더한 ‘포켓팅’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감자 판매도 마스크처럼 5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익살스런 요구도 나왔다.

여기에 홍보에 나선 강원도청 막내 비서의 동분서주 이야기까지 전해지며, 감자는 온라인 공간에서 훈훈한 온기를 확산시켰다. 물론 쇼에 가까운 일회성 행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헐값으로 유통시장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웃을 일이 없는 요즘 감자로 인해 ‘해피 바이러스’가 전파된 건 분명했다.

대박을 친 감자판촉처럼 강원도 현안도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늘 그랬듯 총선을 앞두고 감자만큼이나 친숙한 무대접, 홀대론이 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과정에선 무려 강원도내 6개 지역이 한데 묶인 ‘괴물선거구’가 등장했다. 서울 면적의 무려 11배인 이 선거구는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 민심을 자극했다.

더 가슴 아픈 건 숙원사업을 대하는 정부의 이중잣대다. 20년 만에 이뤄지는 듯 했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는 지난해 10월 동식물 보호를 이유로 물거품이 됐다. 설악권 주민들은 정부가 오색 케이블카를 적폐 취급한 결과라고 지금도 성토한다. 주민들이 애써 준비한 환경보호 대책을 깡그리 묵살한 채 정치적 결정으로 결론을 뒤집었다고 보고 있다.

30년 묵은 현안인 동서고속철도도 설악산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노선에 반대하는 환경부에 막혀 환경영향평가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북한산 국립공원이 노선에 있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와 대조적이다. 똑같이 국립공원이 포함된 노선인데 강원도는 환경보존의 논리가, 수도권에선 편의가 먼저 고려된 결과다.

강원도의 인구는 대한민국 전체의 3%에 불과하다. 백번 양보해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대도시보다 대접을 덜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서울이나 지방이나 다르지 않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공언하지 않았나.

최근 만난 한 지역원로는 “지나고 보니, 동해안에 명태가 넘쳐나고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던 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30년이 넘은 과거를 소환한 책임은 현재의 정치인들에게 있다.

누군가는 다음달 총선을 통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지역의 여론과 민심을 국정에 반영시켜야 할 대변자인 국회의원의 역할은 막중하다. 더 이상 푸대접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이번 선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총선 후보들에게 엄청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랜 만에 해피 바이러스를 배달한 강원도 감자처럼 작은 희망에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것이 생활정치의 시작이다.

박은성 지역사회부 차장대우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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