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공간 사람] 은퇴한 부부의 3칸 거실과 한실 있는 한옥 같은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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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은퇴한 부부의 3칸 거실과 한실 있는 한옥 같은 벽돌집

입력
2020.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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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경기 파주 동패동의 동서로 긴 대지에 일자로 배치된 60대 부부의 집은 북측 정면에서 보면 2층 벽돌집이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 고도 경제성장기를 살아온 베이비 붐(1955~1964년생) 세대는 다양한 주거공간을 압축적으로 경험해왔다. 지난해 은퇴한 60대의 건축주 부부도 전통 한옥에서 출발, 적산가옥과 양옥집을 거쳐 빌라와 아파트, 타운하우스 등에서 살았다. 부부는 지난해 5월 경기 파주 동패동에 처음으로 집을 지었다. 경제상황과 직장에 따라 이사를 자주했던 부부가 원한 집은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 같은 집’이었다. 부부는 “한옥에서 자란 저희는 가족들과 집에서 보낸 행복한 기억이 참 많다”라며 “그렇게 많은 곳에 살았어도 한옥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고 오래가서 한옥 같은 집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의 서쪽에 위치한 한실은 한지 창호에 시스템 창호를 덧대고 목구조로 가려 단열을 챙기면서도 한옥의 느낌이 살아난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 같은 집

부부는 8년 전 땅(대지면적 421.4㎡)을 샀다. 서울 근교에 살기 좋으면서 넉넉한 마당을 두기에 알맞았다. “당시만해도 논밭이었어요. 과도하게 개발될 위험이 적으면서도 주변이 깨끗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하지만 바로 집을 짓지는 않았다. 집을 짓는 대신 부지런히 텃밭을 가꿨다. “어떤 집을 지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국내외를 다니면서 대략 500여군데의 집을 봤습니다.” 각양각색의 집을 봤지만 막상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3년 전 은퇴를 앞두고 비로소 용기를 냈다.

부부는 한옥을 짓고 싶었다. 어렸을 적 마당이 넓은 한옥에서 어머니가 마당에 김치 담글 배추를 씻어 절여서 산처럼 쌓아두었던 풍경, 동생이 배가 아파서 대청을 데굴데굴 구르던 기억, 할머니가 벽장에서 곶감을 꺼내준 기억, 장지문 너머 액자처럼 포개지는 풍경 등. 부부가 고심 끝에 떠올린 집의 공통적인 풍경은 한옥이 배경이었다.

집에 들어서면 세 칸 거실 뒤로 마당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기둥, 도리, 서까래 등을 현대의 중목구조 부재로 바꾸어 설계했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한옥을 원했지만 한옥 마을이 아니었다. 이미 부부가 산 땅 주변에는 노출 콘크리트와 대리석 등 현대 서양 건축으로 지은 집들이 가득했다. 부부는 “우리가 한옥을 짓고 싶다고 동네 풍경을 무시하고 한옥을 지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렇다고 궁궐처럼 휘황찬란한 한옥을 짓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 느낌이 드는 집이어야 했다. 한옥의 핵심 요소인 ‘마당을 삶에 중심에 놓고 사는 집(마당집)’을 지어온 조정구(구가도시건축 소장) 건축가가 부부에겐 적임자였다. 조 소장은 “기와나 한지 등 전통 재료를 써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는 것만이 한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한옥의 정서를 현대 건축의 언어로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스템 창호를 목구조면 뒤로 숨겨 거실에 앉으면 한옥의 대청에 앉은 느낌이 든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처마 지붕, 3칸 거실, 한실 품은 양옥

바깥에서 보면 부부의 집(건축면적 164.96㎡)은 영락없는 양옥이다. 동서로 긴 대지에 일조에 유리한 일자형으로 앉은 집은 백고 벽돌을 쌓아 올리고 징크 지붕을 씌운 2층집이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현관을 들어서면 거실 너머 잔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앵두나무와 살구나무, 사과나무 등이 일정 간격에 맞춰 서 있다. 마당을 바라보는 거실은 목조 기둥을 세워 세 칸으로 나뉘어진다. 유리 창호는 기둥 뒤로 숨어 시야를 거스르지 않는다.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인방 위의 투명한 고창으로 지붕 아래 처마까지 서까래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3칸 거실의 기둥과 보가 주위 풍경을 압도해 마치 대청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조 소장은 “예로부터 우리 건축에서 마당은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안팎의 경계를 허문 공간이었다”라며 “현대식 중목 구조로 한옥의 3칸 대청을 3칸 거실로 만들어 안팎 경계가 없는 투명하고 여유로운 공간감을 얻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기와와 서까래, 보 등 전통적인 재료를 쓰지 않았지만 한옥의 정서가 느껴지는 이유다.

마당에서 바라본 집의 거실 풍경. 계단 끝부분에 여유를 주어 적당한 높이에 조금 넓은 계단참을 뒀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당을 바라보면 마치 한옥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난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부부에게 마당은 삶의 중심이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아내에겐 ‘나만의 수목원’으로, 남편에게는 햇볕을 즐기고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명상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부부는 “아파트 살 때는 며칠만 집에 있어도 너무 갑갑했는데, 마당이 있는 집에 사니 일주일 내내 집에 있어도 답답한 줄 모르겠다”라며 “날이 좋으면 마당에 앉아 한없이 집을 바라본다”고 했다.

한옥의 온기를 담은 한실(韓室)도 있다. 입구 오른쪽 사랑방처럼 배치된 작은 방은 벽뿐 아니라 천장과 바닥까지 한지를 발랐다. 전통 재료를 썼지만 현대 재료로 보완했다. 바닥은 온돌 대신 보일러로, 한지 창호에는 시스템 창호를 덧대 단열에 신경을 썼다. 방 한편에는 뒤뜰과 연결된 쪽마루도 냈다. 부부는 “옛날 구들방 바닥에 누우면 등이 따뜻하면서 아늑한 느낌이 들었는데 구들장이나 온돌을 깔지 않았는데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집의 현관 바로 옆에 있는 한실. 한지로 사방을 두르고, 한지 창호를 달았다. 이곳은 한옥의 아랫목을 닮았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주방과 온실, 침실, 서재 등 내부 공간은 현대 건축의 그것과 다름없다. 차고에서 집 안으로 연결되는 통로라든지, 드레스룸이 딸린 침실, 주방 앞 온실, 코너창을 낸 2층 서재, 단차를 준 2층 가족실, 자그마한 다락 등이 그렇다. 조 소장은 “집은 한옥을 그대로 현대건축으로 재해석하여 만든 집이 아니다”라며 “전통적 공간감이나 미감을 현대적 구조와 디테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2층 서재는 코너창으로 멀리 심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주방 앞에는 작은 온실을 설치했다. 한옥의 장지문처럼 칸칸이 풍경들이 중첩된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양옥이지만 부부는 “정말 한옥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대청 아래 댓돌, 댓돌 아래 마당으로 이어지는 그 느낌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마당을 볼 때 똑같이 들어요. 계단을 내려올 때 마당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건 마치 대문을 열고 한옥에 들어설 때 느낌이고요. 각 공간이 독립돼 있는 양옥집과 달리 이 집은 침실, 거실, 주방 등이 모두 통하는 느낌이에요. 주방 맨 끝에 다용도실 창문 하나만 열어도 반대편 침실에서 바람이 느껴지는데, 그건 장지문으로 칸만 나눠 하나의 공간처럼 사용한 한옥과도 비슷하지요. 밖에서 한옥 같아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다 현대식으로 바꿔놓잖아요, 그와 반대로 저희 집은 밖은 양옥이지만 안은 살아 보면 딱 우리한테 맞는 한옥이에요.”

햇볓이 잘 들도록 남측으로는 창이 활짝 열려 있다. 긴 경사 지붕과 처마를 두어 일사 조절과 처마 아래 공간의 활용을 용이하도록 했다. ©박영채 건축사진작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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