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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부는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

입력
2020.03.31 04:30
수정
2020.03.31 15:5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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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31일 앞둔 15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입구에 선거까지 남은 날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31일 앞둔 15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입구에 선거까지 남은 날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관위 청사 앞뜰에는 ‘수호자상’이 있다. 국민 주권의 수호자 역할을 하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호자상’은 ‘국민 주권’을 의미하는 투표지 모양의 받침대 위에, ‘공명선거에 대한 의지와 엄정 중립’을 표현한 중성의 인체(人體)가 ‘공평’을 의미하는 장대를 수평으로 들고 있는 형상이다. 그 수평 장대를 ‘희망찬 민주국가 발전과 활기에 찬 국민’을 뜻하는 비둘기가 에워싸고 있다.

선거 시기가 되면 선관위는 여지없이 정치 이슈의 중심에 선다. 선거절차 사무와 법규운용, 조사ㆍ단속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자들은 선관위의 결정 하나하나에 주목한다.

국가 기관이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관위의 역할과 임무 수행에 대해 근거 없이 도를 넘어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치적 이슈 몰이를 위해 선관위를 불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선관위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첫 번째 사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나타난 비례 위성정당의 난립을 선관위가 방조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안타깝지만 이는 명백한 정치 공세다. 최근 법원에서도 밝혔듯이 헌법 제8조는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를 구체화한 정당법에서도 형식적 요건을 구비하는 한 등록신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선관위는 정당 설립을 제한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헌법상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뛰어넘어 정당의 존폐를 선관위가 결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선관위가 위성정당의 등록을 거부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겠지만, 선관위가 헌법적 권한 없이 정당의 설립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과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선관위가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법 해석을 한다는 주장이다. 선관위가 어떤 사안에 대해 법규,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유권해석을 하면 그것은 운용기준이 되고, 이는 향후 모든 정당과 후보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개별적으로 정당간 유불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당에나 동일하다. 따라서 선관위가 특정 정당에게 유리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선거의 최고 가치인 공정성·중립성은 물론 선관위의 존립 근거까지 훼손하는 것이 된다. 어떤 기관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겠는가? 한 가지 더, 법 규정이 명확하고 죄형법정주의상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을 할 수 없음에도 선관위가 편파적이라는 비난은 도가 지나치다.

마지막은 위법행위 조치에 있어 선관위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 편들기를 한다는 주장이다. 위법이 명백한 경우 선관위는 즉시 조치하거나 검토가 필요하면 사실 관계를 확인하여 조치 수준을 결정한다.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기도 한다. 선관위는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위법행위에 대해 조치할 뿐 어떤 정당ㆍ후보자에게도 치우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다. 위법행위를 방조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조치 시점, 수준 등에 대한 일방의 이의제기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선관위에 대한 견제나 비판적인 시각은 있을 수 있으나 무모한 의심은 멈추어 주기 바란다.

선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간이다. 이런 때일수록 헌법적 가치에 따른 기관의 운영 원리와 권한의 범위를 준수해야 한다. 국회는 국회의 역할을,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당 역시 정당 스스로의 민주적 가치를 지켜야 할 것이다. 선관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공정한 관리를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더 이상 국민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고 국론을 분열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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