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3일 영국 북동부 타인위어주 뉴캐슬(Newcastle upon Tyne)의 26세 남성 리 할핀(Lee Halpin)이 도시 외곽의 빈 건물 꼭대기 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영국 방송 ‘Channel 4’의 인턴 선발 다큐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으로 홈리스의 일상을 촬영하고자 한 노숙자를 만났고, 그의 협조로 잠잘 곳을 소개받았다. 방치된 지 오래였던 그 호스텔 건물 합판 벽은 군데군데 뚫려 있었고, 외벽도 금간데가 많아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와 술병, 주사기 등이 널려 있었고, 당연히 노숙인은 할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계획은 거기서 일주일을 지내는 거였지만, 그는 두 번째 밤을 넘기지 못했다. 늦은 눈이 내린 뒤였고, 당일 뉴캐슬의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였다.
뉴캐슬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할핀은 시와 소설을 썼고, 축구와 조깅을 즐기던 건장한 중산층 가정 청년이었다. 그의 죽음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인을 저체온증일 것이라 예단하는 보도들이 이어졌고, 알코올이나 약물 과다복용 등이 원인일 수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노숙자 두 명이 석연찮은 이유로 연행되기도 했다.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은 ‘성인 돌연사 증후군(부정맥돌연사증후군, SADS)’으로 확인됐다. 한마디로 피살되거나 사고사한 게 아니라 자연사였다. 성인 돌연사 증후군은 부정맥 즉, 심장박동이 지나치게 빠르거나(빈맥) 늦거나(서맥) 불규칙해(심방세동) 빚어진다. 노령과 고혈압 등 질환으로 인한 심장세포 노화가 주 원인이지만, 유전적 원인인 경우(부르가다증후군)도 있으며, 증상이 돌발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 심전도 검사에서 정상으로 판정돼도 안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할핀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명하고자 했던 영국의 노숙자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을 통해 더 극적으로 환기됐다. 세계 대도시 어디나 대동소이하지만 당시 영국 노숙자 문제는 복지예산 감축 등이 겹쳐 심각한 수준이었다. 2018년 현재 영국 노숙자는 약 32만명으로 그들 절반 이상이 런던에서 지낸다. 시민(총 890만명) 28명 중 한 명꼴인 셈이다. “숱하게 죽어나간 노숙자들은 거들떠 보지 않더니 중산층 ‘변장 노숙자’가 죽으니 난리”라는 냉소적 비판이 거셌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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