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지주사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완승을 거두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조 회장과 3자 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의 경영권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3자 연합이 주총 이후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확보, 현재는 오히려 조 회장 측 지분율을 근소한 차로 앞선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3자 연합이 임시 주총 소집 등을 통해 한진그룹 경영권에 재도전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조원태, 경영권 분쟁 1차전 ‘압승’
27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본관에서 진행된 한진칼 정기 주총에서 조 회장은 모든 안건에서 압승을 거뒀다. 최대 승부처였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은 56.67%의 찬성을 얻어 가결됐고,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한진칼 이사회가 추천한 이사 7명(사내 2명, 사외 5명)도 모두 선임됐다. 반면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을 포함해 3자 연합이 주주제안으로 추천한 이사 후보 7명은 전원 부결됐다.
양측이 각각 상정한 정관 변경 안건은 모두 ‘출석 의결권 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결됐다. 한진칼 이사회 안은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분리 △이사회 내 거버넌스위원회 신설 등이, 3자연합 안은 △전자투표제 도입 △배임ㆍ횡령죄 확정 이사의 자격 제한 △이사회 권한 강화 등이 골자였다.
조 회장의 경영권 수성은 주총이 가까워지면서 확실시됐다. 국민연금(지분율 2.9%) 등 이른바 ‘캐스팅보터’들이 조 회장 지지 의사를 밝힌 데다, 주총 사흘 전 법원이 3자 연합이 제기한 의결권 관련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조 회장 측이 지분율 7%포인트 우위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둔 까닭이다.
양측은 이날 주총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위임장 대조 작업에만 3시간 가까이 걸렸고, 개표ㆍ검표 작업도 평소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석률과 기권표를 산정하는 과정에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지분 늘려온 3자연합, 임시주총으로 반격?
하지만 업계에선 3자 연합이 주총 패배로 와해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전망한다. 최근까지도 KCGI와 반도건설이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나온 공시를 종합하면 3자 연합의 총지분은 42.19%으로 늘었다. 조 회장 측은 백기사인 델타항공이 14.9%로 지분을 늘렸음에도 총지분이 41.39%인 것으로 관측된다. 드러난 지분율만 놓고 보면 오히려 3자 연합이 근소하나마 앞서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한진칼 이사회가 상정한 주총 안건이 대부분 56%대 찬성표를 얻은 걸로 볼 때 소액주주를 포함한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이 최소 48%(주총 출석률 84.73%×56%)에 이른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3자 연합이 내년 주총까지 유지되기엔 응집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올해 안에 임시 주총을 열어 경영권에 재도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승리를 장담하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3자 연합이 지분 추가 확대 여력이 있는 만큼 임시 주총에서 승산이 없진 않지만, 이번 주총 패배로 경영권 탈환의 필수 요건인 이사회 진입에 실패한 터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회장이 승기를 굳히려면 전문경영인으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회장이 주총을 앞두고 공언한 대로 대한항공 소유의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등을 연내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에 성과를 내는 것이 우선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 국면에서 조 회장이 경영 능력을 발휘한다면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겠만, 반대의 경우라면 오히려 3자 연합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