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인 100명’ 뽑혀 10번째 시집 낸 소강석 목사
“‘코로나19’ 사태 탓에 이웃 간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사막화된 세상 속에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100명 안에 들어 열 번째 시집을 낸 현직 목사가 있다. 대형 개신교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의 부총회장인 소강석(58)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다.
새 시집 이름은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 수록된 시 88편 대부분은 미발표 신작시다. 시인은 대조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을 즐겨 활용하는데, 표제작이 대표적이다. 쇠락과 고립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아예 돌이키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시인이 구원을 갈구하는 이유다.
‘우린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나니 / 풀잎으로 만나 낙엽 되어 이별하나니 / (중략)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 사이로 / 내가 서 있어요 / 갈대로 헤어진 우리 /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
‘코로나’, ‘마스크’, ‘손 소독제’처럼 최근 분위기를 반영한 시들도 포함돼 있다. 특히 바이러스 이름인 코로나의 뜻이 왕관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시 코로나에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자각하고 고뇌하는 목회자가 등장한다.
‘내가 왕관을 좋아하는지 어찌 알고 / 이 겨울에 화려한 왕관을 만들어 내게 찾아 왔는지 / 네가 준 왕관을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 아직 내겐 왕관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 어디서든 사랑을 행하라고 외치던 내가 / 너를 사랑으로 영접하지 못해서도 미안하다 / (중략)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 아직 왕관을 두려워한 것은 / 내게 사랑이 부족했던 거야 / 미안하다 부디 겨울까지만 머물다가 / 다시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다오.’(‘코로나’)
소 목사는 “꽃으로 태어난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꽃으로 만나지 못하고 거리 두기의 아픔을 안고 갈대로 헤어지는 게 요즘 형국”이라며 “공동체 문화에서 개인 중심 문화로 바뀌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른 갈대’ 같은 불신 사회가 돼 가는 걸 보며 느낀 안타까움을 시로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도서출판 시선사가 지난해 7월부터 출간해 오고 있는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의 47번째 책이다. 시선사는 “시를 현대화한다는 명목 아래 30여년 동안 어렵게 머리로 쓴 시들을 매우 잘 쓴 시처럼 말해온 걸 반성해야 한다”며 “세 권 이상 시집을 낸 일정한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시선집 특별기획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까지 100권을 완간한다는 게 출판사 목표다.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한 소 목사는 2015년 시집 ‘어느 모자의 초상’으로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다시, 별 헤는 밤’으로 윤동주문학상을 받았다. 맨바닥에서 교인 수가 5만명에 이르는 신도시(경기 용인시) 대형 교회를 일궈낸 ‘맨발의 소명자’라는 게 교계의 평가다. 매년 치열하게 치러지던 예장 합동 부총회장 선거에 지난해 단독 출마해 선거 없이 무투표 당선됐다. 교계 신망이 두터운 그가 나서자 다른 목사들이 출마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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