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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이네” 1시간 만에 동난 번호표에 소상공인 가슴 숯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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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이네” 1시간 만에 동난 번호표에 소상공인 가슴 숯덩이

입력
2020.03.27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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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긴급대출 서울 중부ㆍ남부센터 창구 가보니…]

신용 4등급 이하에 1000만원 급전

긴급대출 첫날 이어 둘째날도 북새통

“7시간 기다려서 5분 상담” 분통

줄 서다 발걸음 돌린 상인들 고성도

내달 정식 시행 앞두고 시범운영

혼란에 오늘부터는 온라인 예약제

26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직원에게 대출 신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부센터는 선착순 300명에게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1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몰렸다. 왕태석 선임기자
26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직원에게 대출 신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부센터는 선착순 300명에게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1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몰렸다. 왕태석 선임기자

“어제 7시간을 기다려서 상담은 겨우 5분 동안 받았어요. 서류가 두 개 빠졌다고 해서 오늘 다시 왔는데 또 1시간30분째 대기 중입니다.”

26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중부센터에서 만난 김모씨는 분통부터 터뜨렸다. 당장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인데, 이틀 동안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 대출 문의에 나섰다가 속만 터졌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보습 학원을 운영 중이라고 전한 김씨는 “시범 운영 첫 날인 어제(25일) 오전 9시부터 7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창구 직원과 마주앉았지만 서류 미비로 대출 신청을 못했다”며 “서류를 보완해 다시 왔는데 또 기다리고 있다”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결국 이틀 만에 대출 약정을 마무리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소진공에서 이틀째 직접 대출 시범 운영에 들어간 일선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한번에 대출 문의가 끝난 사례는 드물었고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소상공인을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 대출은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소상공인에게 1,000만원(특별재난지역 1,500만원) 내에서 소진공으로부터 5일 안에 바로 대출을 받는 제도다. 한시가 급한 소상공인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는 25일부터 전국 62개 센터에서 은행에 갈 필요 없이 직접 대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정식 시행은 내달 1일부터다. 7,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최대 2개월이나 걸리는 일반 긴급경영안정자금에 비해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중부센터에도 상인들은 북적거렸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선착순 300명에게 나눠준 번호표가 1시간 만에 끝나는 바람에 대출 신청을 하러 왔다가 허탕을 친 소상공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서 주점을 운영한다는 김태연(63)씨는 “오늘 대출 신청은 불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허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가게에 3개월째 손님이 아예 없는데 300만원의 월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고 있다”며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 대출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왔는데 어떡하느냐”고 푸념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남부센터는 선착순 100명에게 나눠준 번호표가 일찌감치 동이 나자 번호표 뽑는 기계를 종이로 감싸고 더 이상 뽑지 못하게 막아놨다. 이태웅 인턴기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남부센터는 선착순 100명에게 나눠준 번호표가 일찌감치 동이 나자 번호표 뽑는 기계를 종이로 감싸고 더 이상 뽑지 못하게 막아놨다. 이태웅 인턴기자

서초구에 자리한 서울남부센터 사정 또한 비슷했다. 센터 문을 열기도 전인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무실이 4층인데, 한때 2층 계단까지 줄이 늘어졌다. 선착순 100명에게 나눠준 번호표는 일찌감치 동이 나 번호표 뽑는 기계를 종이로 감싸고 더 이상 뽑지 못하게 막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에 “정부에서 돈 빌려준다고 해서 왔는데 왜 신청을 못 하게 하는 것이냐”는 고함도 터졌다.

이날 번호표를 받는데 실패한 서울 강남구의 필라테스 학원장 정구영(36)씨는 “대출 신청할 수 있는 곳을 여러 군데로 분산 시켜야지, 이 상태로 제대로 대출이 되겠느냐”고 혀를 찼다.

소진공 직원들의 피로도도 적지 않다. 전국 소진공 센터마다 상인들이 하루에 수백 명씩 몰리지만 대응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서다.

중부센터만 해도 기존 직원 9명에 소진공 본부에서 2명을 파견 받고 단기계약직으로 2명을 뽑아 총 13명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창훈 중부센터장은 “최근 며칠 째 직원 전원이 밤 늦은 10~11시까지 근무 중”이라고 토로했다.

소진공은 27일부터 시작할 온라인 사전 예약 시스템 정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시스템이 가동되면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날짜를 사전 예약한 소상공인만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한 센터장은 “예약 날짜를 잡고 방문하시면 대기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서류만 제대로 다 준비해 오시면 곧바로 약정서에 도장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의 상인들이 문제다. 일단 중기부는 이들을 위해 현장 접수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사전 예약자들과 겹치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날 현장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중부센터를 찾은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시범 운영 기간 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koilbo.com

이태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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