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의 ‘블레임 룩’, 왜 입방아 오를까
외모에 관심 지나친 경향…“범죄자보다 사건 본질에 집중해야”
“조주빈 봤어? 휠라 입고 나왔대.”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 사실 외에도 주목을 받는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피의자 또는 피고인들의 패션인데요. 이른바 ‘n번방 사건’에서 ‘박사방’ 운영을 맡았던 핵심 피의자 조주빈은 25일 포토라인에 스포츠 의류브랜드 ‘휠라’ 로고가 크게 박힌 상의를 입고 나왔죠. 덩달아 휠라가 입방아에 오르면서 휠라코리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언론에 “로고를 가려달라”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죠.
악인의 패션 ‘블레임 룩’은 비난(blame)이라는 단어와 외모 또는 패션을 일컫는 룩(look)의 합성어입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패션 또는 이를 대중들이 모방하는 행위를 일컫죠. 주로 논란이 되는 사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돼 브랜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오히려 유행이 되기도 합니다. 휠라코리아 주가는 당일 장중 25% 넘게 폭등했는데요.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영향이 커 보이지만 일부에선 ‘조주빈 효과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몇 차례 있었는데요. 왜 사람들은 범죄에 연루된 인물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외모와 패션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한국 블레임 룩의 원조는 누구?
한국 블레임 룩의 원조로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1999년 검거 당시 입었던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 니트가 꼽힙니다. 이후 짝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미쏘니는 물론 비슷한 옷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져 판매가 급증했다고 하죠. 당시 신창원의 팬클럽까지 생기면서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2000년 로비스트 린다 김이 썼던 에스카다 선글라스도 눈길을 끌면서 해당 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고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불린다고 하네요. 2007년 학력 위조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신정아씨의 경우도 블레임 룩 하면 빠지지 않습니다. 당시 돌체 앤 가바나 재킷, 버버리 진, 알렉산더 맥퀸 티셔츠, 보테가베네타와 입생로랑 가방, 반클리프 앤 아펠의 주얼리 등 해외 명품으로 휘감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죠. 아예 ‘신정아 가방’ 등의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어요.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붙잡힌 후 입고 나왔던 이탈리아 브랜드 카파도 큰 화제였어요. 당시 강호순은 매일 이 옷을 입고 수일간 언론에 노출됐는데요. 그 시기 이 브랜드는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지도 향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며 ‘강호순이 비공식 모델이네’라는 얘기도 돌았죠. 처음엔 경찰이 브랜드 로고를 가리지 않았지만 이후 논란이 되면서 부랴부랴 청색 테이프로 가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2014년 변사체로 발견된 구원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사망 당시 이탈리아 최고급 브랜드 로로피아나 재킷을 입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무려 1,000만원이 넘는 가격대가 알려지면서 대중적 관심을 받았죠. 해외 불법 도박 논란에 휩싸였던 가수 신정환이 2011년 입고 나온 프랑스 브랜드 몽클레르의 패딩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패딩 재킷 한벌에 가격대가 수백만 원에 달하는 브랜드인데요. 이 패딩이 유행하면서 부모님들에게 사달라고 조르는 청소년들이 많아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국정농단’ 수혜를 본 브랜드들도 있다고?
최근으로 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사건 주요 인물들의 블레임 룩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라 불리는 최서원(최순실)은 2016년 검찰에 출석하던 중 몰리는 취재진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는데요. 이 신발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였습니다. 영화 제목을 오마주한 ‘최순실은 프라다를 신는다’, 신데렐라를 차용한 ‘순데렐라’ 등의 각종 패러디가 나왔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경우도 많은 블레임 룩을 만들어냈는데요. 2017년 덴마크 경찰에 체포될 당시 입고 있던 패딩이 눈길을 끌면서 ‘정유라 패딩’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를 캐나다 고급브랜드 노비스야테시의 제품으로 추정하기도 했는데요. 노비스야테시 측은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한 듯 자사 제품이 아니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죠. 이외에도 유니클로 스타워즈 티셔츠, 스마일 티셔츠 등 그가 입고 나왔던 옷들은 족족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울러 최순실의 조카인 장시호가 국회 청문회에 입고 나왔던 블랙야크 패딩도 인기를 끌었는데요. 60만원이 넘는 값비싼 옷인데도 청문회 직후 구매 문의가 폭증했다고 하네요. 이 국정농단 청문회에는 뇌물 의혹을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참석했는데요. 와중에 쉬지 않고 꼼꼼히 립밤을 바르는 모습에 제품 자체가 화제가 됐죠. 블레임 룩이라기보다는 국내 최고 재벌이 사용하는 립밤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받은 면이 있는데요. 이 소프트립스 립밤은 이후 ‘이재용 립밤’으로 불리게 됩니다.
해외는 어떨까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 살인 혐의로 기소됐던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의 티셔츠가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있는데요. 폐쇄회로(CC) TV 영상 속에서 입고 있던 ‘LOL’ 티셔츠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북한 여자 스파이가 입었던 것과 같은 티셔츠’라고 홍보되기도 했죠.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었던 독일계 애나 소로킨도 패션으로 주목 받은 사례인데요. 거액의 상속녀인 것처럼 사기행각을 벌여 재판에 넘겨졌지만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법정에서도 매번 화려한 원피스 등을 입고 나오며 대중을 놀라게 했죠.
블레임 룩에 쏠리는 눈, 뭣이 중헌디?
전문가들은 유독 한국에서 블레임 룩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타인의 부와 외모 등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문화와 집단주의 성향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아울러 범죄의 본질보다는 범죄자 개인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사회는 집단성이 강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많이 갖는 특성이 있는데, 사건이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주 노출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집단적 동조심리가 작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봤는데요. 그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보다는 범죄로 축적한 부와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동경에 ‘그들은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관심이 쏠려 혹여 범죄가 미화될까 우려된다”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또한 “일부 범죄자를 대단한 사람처럼 영웅시하거나 그가 무엇을 입었는지 관심 갖고 심지어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하게 개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며 “범죄자 개인보다는 사건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