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법안 중 1개 통과 후 종결, 다른 상임위 논의 못해… 유권자들 ‘2호 청원’ 올려
졸속 처리로 질타를 받고 있는 ‘n번방 재발 방지’ 국회 청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성급한 매듭짓기 때문에 무력하게 종결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10만명이 동의한 최초의 국회 청원’이라는 점에 무게를 실은 국회는 차관급 회의까지 거쳐 상임위 4곳에 청원을 회부했다. 그러나 주무 상임위인 법사위는 청원 내용을 일부만 반영한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한 뒤 후속 논의를 서둘러 마감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전자청원제도) 시스템에 해당 청원이 등장한 것은 올해 1월이다. 1달여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제1호 청원’이 성립되자, 국회는 지난달 10일 차관급인 입법차장 주재 회의를 열고 필요 조치를 검토했다. 회의에선 법사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행정안전위, 여성가족위 등 총 4개 상임위에서 입법 등 후속 조치를 각각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사위는 법정형 강화를, 과방위는 사이버명예훼손죄 처벌 강화를 담당하고, 여가위는 2차피해 방지 장치를, 행안위는 경찰 수사 매뉴얼 신설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법사위는 상임위별 논의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맡았다.
하지만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이달 4일 해당 청원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다”는 보고서를 남긴 채 돌연 종결됐다. 법사위가 청원 대책 중 극히 일부인 ‘딥페이크 처벌 강화’ 관련법을 통과시키면서 “청원의 취지가 반영됐다”고 결론 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머지 상임위 3곳이 더 이상 안건을 논할 근거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법사위 소속 인사들은 해당 청원을 스스로 종결시켰다는 사실을 자체를 부인한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23일 입장문에서 “청원을 결코 축소나 졸속 처리한 적이 없다”며 “행안위와 여가위는 정부정책으로 충분하다고 봐 행정부로 사안을 넘겼고, 법사위는 성실히 관련 법을 통과시킨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복수의 법사위 관계자 역시 25일 통화에서 “나머지는 해당 상임위에서 앞으로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법상 법사위가 종결시킨 청원을 다른 상임위에서 재심사할 근거는 없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국회 관계자는 “n번방 사건의 무거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데다 청원 제도를 처음 접하다 보니 법사위가 책임지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허망하게 사라진 ‘1호 청원’의 처지에 분노한 유권자들은 같은 내용의 청원을 다시 국회에 올렸다. 23일 재등장한 ‘n번방 재발 방지’ 청원은 하루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회 관계자는 “1호 청원을 허무하게 흘려 보낸 국회에 국민들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 같다”고 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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