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했던 소상공인 직접 대출 첫날… 대기자 관리 엉망·시스템 다운되기도
박영선 장관 “처음 실시하는 제도로 현장에서 혼선이 있을 수 있다” 양해 구해
2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남부센터. 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오전 11시30분 무렵, 센터가 있는 4층부터 2층까지 계단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날부터 시작한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경영안정자금 직접 대출을 받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옮긴 이들이었다.
◇“시스템이 다운됐어요”… 난장판 된 센터
대출금이 1,000만원 이하였지만 다급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 걸까.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리면서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줄을 길게 늘어섰던 이들보다 절박함이 그 몇 배는 되는 듯 보였다. 서울 관악구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박선희(69)씨는 “뉴스에서 언뜻 소상공인들을 지원해준다고 봤는데 잘 이해가 안 가서 아들에게 부탁해서 같이 왔다”며 “실은 오늘 서류도 잘 챙겨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초조해 했다.
처음 겪는 일에 센터 직원들은 우왕좌왕했다. 번호표가 없다며 센터 앞에 종이를 놓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했다. 그리고 낮 12시30분, 점심시간이니 줄을 서지 말고 1시 이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낮 1시. 줄을 서다 명단을 남겼던 이들과 새로 찾은 이들이 뒤섞이며 센터 앞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센터 직원이 앞서 적은 명단으로 줄을 다시 세우려 했지만, 인파가 뒤섞이면서 통제 불가였다. 그리고 나온 센터 직원의 설명은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전산 시스템 오류로 오늘은 더 이상 처리가 어렵습니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찾아주셔야 합니다.”
화가 치민 일부 소상공인들은 센터 문을 두드리고 고성을 질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센터 측이 나눠준 번호표를 받아 들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관악구에서 의류매장을 하는 박정이(63)씨는 “일단 급해서 왔지만 지원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 게 너무 답답하다”며 “홈페이지는 다운되고, 전화는 받지를 않는데 이게 무슨 서민을 위한 정책이냐”고 말했다.
◇“하루가 아쉬운데 어떻게 기다리라고…”
이날 혼란은 신용등급이 보다 나은 이들이 받을 수 있는 기존 보증부 대출과 이날 시작된 직접 대출을 원하는 이들이 뒤섞이면서 가중됐다. 접수 창구라도 분리를 했더라면 다소 나았을 텐데 센터마다 그런 준비를 할 여력은 없었다. 강북구에 위치한 서울북부센터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센터는 밀려드는 신청자에 이미 오전에 신청 접수를 마감했다. 하지만 대출 신청이 아니라 상담만이라도 받겠다는 이들이 몰려들며 대기번호는 오후 1시 기준 200번을 넘겼다.
이날 센터를 찾은 상인들의 사정은 하나같이 절절했다. 중국과 미국 유학원을 운영한다는 오미정씨는 “중국과 미국 대학교의 입학비는 물론 서류 처리비까지 모두 환불하고 있다”며 “기존 대출 기다리려면 2개월 걸린다고 하니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코로나19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대출 기다리다 죽겠다는 말이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이모(57)씨도 “현재 매출이 0이다. 하지만 월세 150만원은 꼬박꼬박 나가 부담스럽다”며 “은행에서 대출해주지만 심사 통과될지 알 수 없고, 최소 2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오늘 직접대출을 신청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도가 정착하는 데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다며 이해를 구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아마 현장에서는 처음 실시되는 것이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며 “조금 여유가 있는 분들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조금 기다려주는 미덕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가 아쉬운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더 기다려줄 수 있을지 정부의 보다 세심한 정책이 절실한 때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혜인ㆍ이태웅 인턴기자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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