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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우의 Biz잠망경] 봄은 왔지만 온기 사라진 경제, 여름엔 살아날까

입력
2020.03.25 16:54
수정
2020.03.2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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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 펴고 발랄하게 오가는 봄의 모습 사라져

피 돌지 않으면 위험하듯 돈 돌지 않으면 도산 위기

‘침묵의 봄’이 지나면 활기찬 여름이 올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저서‘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봄이 왔는데도 새들이 울지 않는다’고 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관해 이야기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전에는 아침이면 여러 가지 새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2차 세계대전 이후 DDT 등 급증한 살충제 때문에 새들이 사라진 것을 한탄한 것이다.

지금이 그런 분위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도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붙어 버렸다. 봄에 새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듯, 사람들이 기지개를 펴고 발랄하게 오가는 모습이 사라졌다. ‘활기찬 거리’ 대신 ‘사회적 거리’가 중요해졌다. 각종 모임도 사라지고 이야기 꽃이 피던 음식점과 카페는 음산하다. 봄의 실종이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가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고장이 나 실핏줄로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면, 지금은 심장은 멀쩡한데 코로나19 때문에 실핏줄이 먼저 망가져 펌프질을 해도 혈액이 흘러가지 않는다. 전자는 심장만 고치면 실핏줄로 혈액이 흘러갈 수 있었다.

지금은 정부가 돈을 뿌리려 해도 마땅한 공급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당장 돈이 급한 영세업자나 국민들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이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재난소득’도 한 사례다. 온 국민에게 모두 돈을 지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특정 계층에게만 주려니 서류작업이나 전달 비용이 엄청나고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헬리콥터로 돈을 투하할 수도 없다.

피가 잠시나마 돌지 않으면 신체가 위험해지듯 돈이 몇 개월만 돌지 않아도 개인이나 기업은 도산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유동성의 위기다.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2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2차 민생ㆍ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기업과 금융시장에 무려 10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충격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고 했다. 지원 대상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로 확대키로 했다. 실탄이 넉넉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코로나19에서 자유로운 대기업은 많지 않다.

이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계는 백척간두에 있다. 두산중공업 등 위기의 대기업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가 채권시장안전펀드를 편성해 50조원 규모의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은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이어 3번째로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반증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익히 경험했듯,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이 해고부터 서두른다. 그래서 실업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당시 기업구조조정 등으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기업이 도산하거나, 생존을 위해 비용을 대폭 줄이려고 대량해고를 한 것이다. 게다가 신규취업도 봉쇄된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이 급강하했다. 그 ‘잃어버린 세대’의 공포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지금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주52시간 최저임금인상 등으로 한차례 타격을 받은 영세업자들이 또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고용을 줄이고 있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면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속도가 예전보다 매우 느려졌다. 주방이나 홀에 근무하는 인원을 줄였다는 얘기다. 손님도 크게 줄었다. 매출이 90%가 감소했다는 아우성도 이젠 뉴스가 되지 않는다.

이미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 500만명이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항공업계 등을 중심으로 수 천명씩 내보내고 있다. 미국은 2분기 실업률이 무려 30%로 치솟고 실업자가 1,500만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여파로 전 세계 실업자가 2,5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터무니 없는 낙관이라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온다.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는 얘기다. 패닉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대량실업이 자칫 지구촌의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일단 실직한 사람이 단기간에 다시 직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미래는 어둡다. 봄은 이미 실종됐다. 과연 뜨거운 여름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조재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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