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착취물 보며 피해자에 미안함 없었다” 뒤틀린 ‘그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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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착취물 보며 피해자에 미안함 없었다” 뒤틀린 ‘그놈’들

입력
2020.03.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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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등 이용자 대다수 “별 생각 없이 빠져들어” 발뺌

고교생이 화장실 도촬물 얻으려 흥정 “큰 죄인지 몰라”

당국 처벌 방침에 ‘수사 피하는 법’ 상담 커뮤니티 몰려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텔레그램 비밀방을 통해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조주빈(25)이 25일 처음으로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죄한다”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동영상을 이용한 대다수 남성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어요”라고 증언했다. 불법 동영상을 구매하고 이용하면서도 “별 생각 없었다”면서 불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법무부와 수사당국이 텔레그램 비밀방 이용자들의 신상공개 및 처벌방침을 밝히자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상담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등장해 국민적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접촉한 4명의 텔레그램 비밀방 이용자들은 모두 “성착취물을 보는 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10대 고교생인 A군은 “성착취물 공유글에 ‘좋아요’가 200개 넘게 눌려 있었다”며 “호기심에 들어간 건데 큰 죄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B씨는 “아동청소년 영상물을 공유한다는 링크가 있길래 접속했다”며 “수십명이 접속해 있었다”고 말했다. 10대 고교 졸업생과 20대 군인이라고 밝힌 나머지 2명도 불법촬영ㆍ지인능욕ㆍ아동음란물 등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착취물을 일상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해놓고서도 ‘큰 일인 줄 몰랐다’고 발뺌했다.

고교생 A군은 텔레그램을 통해 화장실 불법 촬영물을 이용한 경우. 불법촬영물을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판매자와 연락이 닿았다는 A군은 “불법 영상물을 달라고 1시간 가량 판매자를 설득했다”고 했다. “화장실 있나” “몰래 카메라가 맞나” “10대는 없나”라고 입씨름을 해도 판매자가 영상을 주지 않자 “n번방 영상을 주겠다”며 흥정까지 했다. A군은 불법 영상을 얻기 위한 치밀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생각 없이 했다”면서 태연하게 범행과정을 설명했다.

성착취 동영상 이용자들의 안일한 성범죄 인식은 2차 가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다. 지난해 ‘n번방’ 피해를 입은 E씨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된 뒤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지만 약 1주일만에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텔레그램 비밀방에 E씨의 트위터 계정이 공유되자 이용자들이 그 계정에 난입했기 때문이다. 앞서 E씨는 계정을 만들며 “너무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가입 이유를 전했지만, 이제 트위터에서 E씨의 글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성착취 현실을 고발한 기자의 사진을 돌려 보면서 이번 사건을 유희 거리로 소비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사법당국이 성착취물 이용자들까지 처벌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용자들은 수사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상담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몰려들었다. 일종의 온라인 성범죄 컨설팅 카페인데, 회원들 사이에서는 ‘음란물 다운로드는 죄가 아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회원 F씨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언급하며 “(적극 유포하지 않은) 단순 시청자나 다운로더는 절대 안 잡힌다”며 “이보다 더 잔인한 사건도 수두룩하고 경찰도 야동 보는 사람일 텐데, 유료 회원 선에서 잡고 끝날 것”이라고 했다.

카페에서 범행을 반성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 사이트는 이용 않겠다’는 식일 뿐,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18년 8월 경기 수원의 한 여고 기숙사 몰카 영상 유포 사건으로 수사 받다 이달 초 내사종결 됐다는 C씨는 “남자가 살면서 전과기록 한두번 날 수 있고 나더라도 후회 없이 살면 된다”며 “아청법 음란물 배포죄까지는 신상등록 제외이니 낙천적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인식을 개선하지 않는 한 ‘n번방’ 사태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한국아동단체협의회,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 관련 38개 단체는 공동 성명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쳐 디지털 성범죄가 지금의 사회적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며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및 배포 등에 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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