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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은 회사채까지 매입하는데… 한은, 꿈쩍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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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은 회사채까지 매입하는데… 한은, 꿈쩍 않는 이유

입력
2020.03.25 20:30
수정
2020.03.25 2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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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무릅쓰며 발권력 사용 안돼”… 중앙은행 원칙론

현행법상 재량도 벗어나

연준도 미 재무부 보증 받아 시행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현행 1.50~1.75%인 기준금리를 동결키로 결정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현행 1.50~1.75%인 기준금리를 동결키로 결정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세계 금융시장에 마비 증상이 심해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꺼내지 않았던 ‘회사채 매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국내 일각에서도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회사채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은 중앙은행의 원칙론, 한미간 현실 차이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럽 이어 미국도 ‘중앙은행 회사채 매입’

25일 외신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선진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신용경색 조짐을 보이는 회사채 시장을 직접 지원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미 연준은 우량기업의 회사채, 이를 기반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신용기구 2개를 설치해 한시 운영하기로 했다. 앞서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비상 조치로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지만, 회사채까지 매입 범위를 넓힌 건 이번이 최초다.

원칙적으로 연준은 회사채를 매입할 수 없지만, 미 정부(재무부) 승인과 보증을 받는 별도 기구를 통해 간접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연준법은 이럴 경우 “정부가 납세자 손실 방지를 위해 충분한 보증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최근 연준 안팎에서는 연준법을 개정해 회사채 직접 매입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중앙은행의 회사채 직접 매입이 이미 흔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6년부터 투자등급 회사채를 직접 매입했다. 최근 코로나 특별 매입 프로그램의 매입 대상에는 CP도 포함시켰다. 영란은행(BOE)도 보유채권을 2,000억파운드 늘리면서 국채와 더불어 비금융 회사채 매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회의론은 적지 않다. 코로나19 공포가 여전한 금융시장에서 우량채 위주의 매입 프로그램이 정작 위험한 투기등급 채권시장까지 안정시키지 못할 수 있다. 또 중앙은행이 민간기업을 직접 구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라야나 코철라코타 전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이 직접 대출에 개입하는 것은 디폴트 위험을 안게 된다는 의미”라며 “기업위험 문제는 의회의 영역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의 회사채 매입 관련 움직임 -김문중 기자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의 회사채 매입 관련 움직임 -김문중 기자

◇한은, “발권력 남용이 더 위험”

선진국의 이런 움직임에, 국내에서도 정치권과 시장 일각에서 “발권력을 지닌 한은이 직접 회사채와 CP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금융안정태스크포스(TF) 단장은 미 연준의 예를 들며 “단기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것 같은 충격요법이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은은 이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근거는 우선 ‘손해를 무릅쓴 채 발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중앙은행의 원칙론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국가의 주요 기능인 발권을 한은에 맡긴 것은 자의적으로 국민의 부담이 되는 손실위험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현행법상 회사채와 CP 직접 매입은 한은의 재량 범위를 벗어난다. 한은법은 매입 가능 증권을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조건이 완전 이행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회사채나 CP는 상환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상존해 별도의 보증이나 법 개정 없이는 매입 대상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위기 시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려는 시도는 반복됐다. 조선ㆍ해운 구조조정 이슈가 한창이던 2016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한은이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 등의 산업금융채권을 매입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게 하자”며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를 압박한 바 있다. 당시에도 한은은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보였다.

대신 한은은 정부가 조성하는 20조원대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참여한 시중은행을 간접 지원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한은은 채안펀드 참여 금융사에 출자액의 50%를 환매조건부채권(RP) 형태로 지원한 바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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