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해진 개미’의 승리일까, 2017년 비트코인 광풍 속 ‘가즈아~’ ‘존버’의 재연일까.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개인과 외국인 투자자의 역대급 기싸움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외국인의 기록적인 순매도 물량을 국내 개인투자자(개미)들이 역시 기록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장장 3주 간에 걸친 기싸움은 24일 개미들이 순매도로 돌아서며 잠시 멈췄지만, 승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글로벌 증시가 연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상황에서 외국인과 개미군단이 벌이는 사상 초유의 치킨게임 결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떠받치기 끝에… 물량 던진 개미들
이날 코스피는 역대 최고 상승폭(127.51포인트)으로 올라 1,600선을 탈환했다. 지수 급등 못지 않게 눈에 띈 것은 그간 폭락장에도 순매수 행진을 멈추지 않았던 개미들의 태도 변화다. 개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4,615억원어치 주식을 팔아 치우며 14거래일 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외국인의 투매 행렬을 힘겹게 떠받쳤던 개미들이 주가 상승에 물량을 내던지며 간만의 현금화에 나선 셈이다.
지난 한달 동안 국내 개인 투자자는 연일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부터 지난 23일까지 두 달 여간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7조2,963억원 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세계 증시가 연일 곤두박질친 이달 들어서도 개인 투자자는 9조7,481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달 기록한 역대 월간 최대 순매수액(4조8,974억원)을 일찌감치 뛰어 넘은 액수다. 이달 10조737억원을 팔아 치우고 떠난 외국인 매물을 사실상 고스란히 떠 받은 셈이다. 개미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자금으로 삼성전자 등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반외세 운동인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투자 성적표는 아직까지 형편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24일 급등분을 반영해도 1월 20일 대비 코스피는 28% 추락했고 이 달 들어서도 20%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개미들의 투자금은 주로 국내 대장주에 집중됐다. 개인 투자자는 이달에만(23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약 5조6,000억원어치 사들였다. 이달 개인 순매수액의 절반(약 47%)에 달한다. 그 뒤 역시 현대차(7,067억원), SK하이닉스(5,697억원) 등 국내 시가총액 상위기업들이 이었다.
이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20% 이상 하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른바 ‘삼전불패(삼성전자는 망하지 않는다)’의 믿음이 개미들의 지갑을 계속 열고 있다. 실제 이날 외국인들은 삼성전자를 1,300억원 순매수해 10.5% 올랐다. 이는 2009년 이후 11년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직장인 한지은(39)씨는 최근 “결국엔 ‘육만 전자(삼성전자 육만원대)’에 이어 팔만, 어쩌면 십만전자까지 간다고 생각해 여윳돈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가보지 않은 길… 신중한 선택 필요
개미들의 이런 움직임에 평가와 전망은 엇갈린다. 개미들은 대형주 주가의 ‘V자형’ 반등을 꿈꾸지만, 일각에선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과거와 전혀 다른 형태여서 증시 변동성이 앞으로 더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을 내놓는다.
과거 수 차례 대형위기 때를 봐도 결국 패자는 개미들이었다는 아픈 학습효과를 상기시키는 분석도 있다. 실제 1997년 8월 700선을 웃돌던 코스피는 외환위기가 본격화된 10월 400선까지 추락했다. 당시에도 개인가 대거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코스피는 이듬해 6월 기업 구조조정 타격에 200선까지 곤두박질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개미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사태를 일시적인 주가 조정으로 여기지만, 반등 시점과 폭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외국인에 비해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한 개인에게 지금 같은 널뛰기 장세는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위기 때 급락을 딛고 곧 제자리를 찾았던 과거의 주가 그래프는 개미들에게 장기 투자의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지나고 보면 현재의 급락장이 우량주를 역사적 저점에 매수할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미들이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주워 담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투자”라며 “위기회복 시그널이 나오면 결국 반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 만큼 장기적으로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닌 셈”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개인들이 여윳돈이 아닌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인 신용거래융자는 지난달 25일 10조5,000억원을 넘어서며 고점을 찍었다. 1월부터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자 빚을 내 주식에 뛰어든 개인투자자가 급증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3일 신용잔고는 6조7,672억원으로 3조원 가까이 줄었다.
일반적으로 신용거래는 주가가 오르는 강세장에서 급증하고 약세장에서 급감하기 마련인데, 위기에 배팅을 한 개인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한지영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매수는 적절한 전략이지만 국내 증시가 더 급락하면 이를 버티지 못한 개인의 물량 청산이 늘어나고, 추가적인 수급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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