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아동청소년보호법에 ‘성착취’ 개념 도입키로
성착취물이 광범위하게 제작ㆍ유포된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사건과 관련 여성가족부가 아동ㆍ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에 ‘성착취’ 개념을 추가하기로 했다.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성범죄가 진행되기 이전 이들을 꾀어내는 과정인 ‘온라인 그루밍(Groomingㆍ길들이기)’까지 처벌하는 근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24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에는 이정옥 여가부 장관과 교육부, 경찰청, 법무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 신종 디지털 성범죄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n번방 사건에 대해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n번방 사건 엄중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도 “국민 법 감정에 맞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빠른 시일 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청법에 ‘성착취’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 한국일보가 입수한 여가부의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대책안’에 따르면 불법 촬영 및 유포 행위 처벌에 한정됐던 대응 범위를 아동ㆍ청소년 대상 온라인 성착취 처벌까지 확대한다. 이를 위해 여가부는 아청법 제13조 ‘아동ㆍ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아동ㆍ청소년대상 성착취’로, 제11조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을 ‘아동ㆍ청소년이용성착취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
그간 아청법에는 아동ㆍ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해 이들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를 처벌할 수 있었으나, 온라인상 그루밍 행위는 명시하지 않아 실제 처벌은 어려웠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ㆍ구속)도 피해자들을 유인한 행위, 피해자들이 스스로 성 착취물을 찍게 만든 행위 자체는 현행법상 디지털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스폰 알바 모집’과 같은 글을 게시해 미성년 피해자 16명을 유인했다. 온라인 그루밍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이메일, 채팅방, 온라인 게임, 데이트ㆍ채팅 애플리케이션, SNS 등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아동ㆍ청소년 성범죄의 시작점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청법에 성착취 개념이 도입되면 성범죄와 관련한 아동ㆍ청소년 보호 범위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까진 성범죄에서 아동ㆍ청소년은 자발성 여부로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자(대상아동청소년)로 나뉘었다. 자발적으로 제공한 아동ㆍ청소년은 국선변호사 지원 등 정부의 피해자 지원조치를 받을 수 없고, 되레 소년법상 처벌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임다혜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청법에 성착취 개념이 들어간다면 더 이상 논란이 있는 자발성 여부가 중요하지 않고 이들의 취약한 상황을 남용해 학대나 착취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여가부는 아청법에 몸캠, 성적 대화, 만남 요구, 성착취물 유포 협박, 온라인 그루밍 등 신종 성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처벌안도 신설하기로 했다. 기존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 판매시 징역 10년 이하, 소지시 1년 이하에 처하도록 한 처벌 수위도 판매시 3년 이상, 소지시 3년 이하로 상향하기로 했다. 아울러 법무부와 함께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유포 협박죄 신설도 검토한다.
한편, 여가부는 n번방, 박사방 피해자들에 대해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특별 지원단’을 구성,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아 △신속삭제지원 △심층심리지원 △법률지원 △지속 상담 및 수사 조력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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