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내 OTT 기업들 화질 낮춰
국내도 트래픽 크게 늘었지만 데이터망 예비 용량 최소 40% 둬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애플, 디즈니, 페이스북.’
최근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유럽 내에서 자사 동영상 서비스(OTT)의 화질을 낮추기로 결정한 기업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사람들이 온라인 서비스에 몰리면서 네트워크 과부하로 정보 전달의 필수 경로인 인터넷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공룡들이 코로나19에 ‘품질 희생’을 감수하는 형국에 이른 셈이다.
우리나라도 대응에 들어갔다. 정부가 통신사를 비롯해 카카오, 네이버, 구글 등 관련 기업들의 트래픽 현황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다. 국내의 경우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유선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 당장 통신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등의 우려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접속 폭주로 인한 장애 등을 예방하기 위해 사업자들은 24시간 대응 체계를 정부와 공유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기로 했다.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이날 장석영 제2차관 주재로 진행된 트래픽 안정성 점검 회의 결과, 3월 국내 트래픽은 1월 대비 최대 13% 증가했다. 회사들의 재택근무 확대, 대학들의 사이버 개강으로 모바일 메신저, 포털, 클라우드 접속이 늘고 개인들의 OTT 사용량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데이터 모니터링 업체 GS네오텍의 2월 주요 서비스 트래픽 조사 결과 OTT 트래픽 발생량이 1월보다 44.4%나 늘었다.
트래픽을 처리하는 유무선 인프라는 넓은 지역에 걸쳐 서로 연결돼 있고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도 제한돼 있다. 트래픽 대응에 실패하면 대규모 네트워크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유럽이 기업에 트래픽을 임의로 줄이도록 요청한 것도 네트워크 용량 대비 트래픽이 과도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최대 수용 용량도 부족하고 기지국, 통신장비 등도 낙후된 지역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통신사 텔레콤이탈리아는 최근 유무선 데이터 사용량이 75% 증가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넷플릭스, 유튜브 등은 화질 자체를 고화질(HD)에서 표준화질(SD)로 낮추거나, 영상의 매끄러움 등을 결정하는 비트레이트(시간당 처리하는 비트 수)를 25%가량 줄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와 업계에선 아직까지 국내 상황이 용량 대비 트래픽 증가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통신사들은 수용 가능 데이터 용량을 100%로 가정할 때 최소 40%를 여유 용량으로 남기는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가장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시점 대비 40~50% 이상 용량을 예비로 확보하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과기정통부 점검에서 3월 트래픽 최고치가 통신사 보유 용량의 45~60% 수준으로 조사됐다.
다만 국제망을 사용하는 서비스는 국내 인프라만으로 소화할 수 없어 용량 부족 사태가 감지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국제망 용량이 부족한 SK브로드밴드는 최근 넷플릭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접속이 끊기거나 화질이 뭉개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해외 서버와 연결된 해저케이블의 일시적 장애에 넷플릭스 이용자 급증이 겹쳐 불편이 발생했지만 즉시 복구했다는 게 SK브로드밴드 측의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소화하는 트래픽은 비교적 철저히 관리할 수 있지만 국제망은 우회망 확보, 용량 증설 등에 시간이 필요해 면밀한 감시 체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도 철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을 강조했다. 장석영 제2차관은 “국지적, 일시적으로 트래픽이 증가하면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통신사 등이 지장 없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장애 발생 시 정부와 신속히 상황을 공유해 대응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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