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듣는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어느새는 아니다. 이렇게 늙기까지 오래 걸렸다. 젊음은 공짜로 오지만 늙기는 어렵다. 이 풍진 세상에서 막걸리 한두 잔에 18번 하나 갖고는 제대로 늙어갈 수 없다.
돌이켜보니 참 많이 듣고 많이 불렀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부터 시작해 LP판, 워크맨, CD, MP3, 음원, 스트리밍으로 평생 따라가며 들었다.
부르는 장소는 시대를 좇아갔다. 양은주전자에 죄 없는 양철통 쇠젓가락으로 두들겨 가며, 인사동 한정식집 1인 밴드 앞에서 선배들 즐겁게 해준다고 마이크 빙빙 돌려가며, 단란주점에서 단란하지 않게 폭탄주 말아 가며, 노래방에서 아재들끼리 싸구려 청승을 떨며…. 그렇게 수십 년 불러댔다.
얼굴의 주름과 함께 18번은 바뀌었을 터다. 아마 ‘고래사냥’이나 ‘하얀 나비’부터 시작했겠지. 그리고 ‘아파트’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거쳐, ‘사랑했어요’나 ‘존재의 이유’ 정도를 지나, ‘광화문 연가’와 ‘낭만에 대하여’까지 오지 않았을까. 내 노래는 ‘대책 없는 열정→사랑과 실존→연민과 회한’의 순서를 밟았다.
그런데 나만 늙은 건 아니다. 오늘 음반기획자이자 작사가인 이주엽의 신간 ‘이 한 줄의 가사’를 읽다가 어떤 책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졸고의 제목은 내가 평생 존경한 그 선배 것을 허락 없이 훔친 거다. 한국일보 주필을 지낸 임철순의 칼럼집 ‘노래도 늙는구나’(2011년). 내 기억에 이보다 멋들어진 책 제목은 세상에 없다.
이 짧은 한 문장에 노래의 숙명이 담겨있다. 오선지는 낡지만 듣는 이는 늙는 거다. 가수도 나이 먹어 가지 않는가. 그러니 노래‘도’ 기실 주인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가수의 목소리는 이제 힘은 빠졌으되 질박하다. 감성은 조용하되 침잠한다. 듣는 이는 다를까. 들을 때마다 켜켜이 가슴에 얹힌다. 오월의 꽃향기는 가슴 깊이 더 그리워지고,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지 더 애틋해진다. 얼마나 더 가슴에 노래의 탑을 쌓으려나.
우리 때는 멜로디보다 가사였다. 목청은 가사에 먼저 반응했다. 가사는 소주고, 리듬은 소주병이었다. 그 시절 노래들은 거개가 한 편의 시였다. 가사가 시시껄렁했다면 그 노래들은 결코 나이를 먹어 가지 않았을 거다.
사회적 거리 두기 덕에 한달음에 읽고 만 ‘이 한 줄의 가사’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래의 꿈은 음악과 문학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가사는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책은 그런 눈부신 노랫말을 찾아 헤맨 빛나는 아포리즘으로 가득했다.
여기 채록된 40여 곡들은 아마도 저자가 20대였던 1970~80년대를 관통한 것들이다. 대학생 이주엽은 낮에는 최루탄을 마시고, 밤에는 쓴 소주를 마셨을 거다. 알코올로 목구멍을 씻으며 들국화를 불러 제쳤을 거다.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아, 그래, 이 노래, 이 노래가 있었지, 왜 그동안 잊고 지냈을까” 중얼거렸다. 그 노래, 그 노랫말들에 내 젊은 날의 풍경과 이름도 잊힌 누군가의 모습이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편을 읽다가는 음원을 찾아 이어폰을 꽂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하루 종일 이 첫 소절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때(1988년)도 이 노랫말이 가슴을 때렸을까. 나도 늙었고 노래도 늙었구나.
저자는 ‘고래사냥’을 이렇게 끝맺는다. “청춘의 꿈은 푸르고 비리다. ‘가슴에 하나 가득 슬픔뿐’이던 뜨거운 신파, 날것의 청승 안에서 머무른 한 시절이 있었다. 아, 헛된 꿈과 사랑,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세월이여, 잘 가거라.” 노래방에 가고 싶다. 몰래.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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