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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착취 사건’ 뭔지도 모르고 법안 심의한 국회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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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착취 사건’ 뭔지도 모르고 법안 심의한 국회 법사위

입력
2020.03.23 20: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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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개정 성폭력처벌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강력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개정 성폭력처벌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강력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저도 잘은 모르는데요.”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이달 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인 ‘n번방 방지법’을 심사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원회 속기록에 남은 발언이다. 23일 본보가 속기록을 확인한 결과, 여야 법사위원, 사법부 관계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열린 시점은 온라인 공간에서 미성년자 등 여성을 집요하게 성착취한 ‘n번방 사건’이 이미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정작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자들은 n번방의 존재에 무심했던 것이다.

당시 법사위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로 가짜 영상ㆍ음성을 만들어 내는 행위ㆍDeepfake)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골자로 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등 4건을 청원과 함께 묶어 심사했다. 상징성이 큰 1호 청원을 다른 법안들과 함께 심사한 것은 ‘입법 편의’ 때문이었다. 법사위 관계자는 23일 “여야 간사 결정사항이었다”고 했다.

‘n번방 사건’은 전례 없이 잔혹한 수법이 동원되고 전례 없는 규모의 가해자가 가담한 초유의 성폭력 사건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사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의사진행을 맡은 송기헌 소위원장은 1호 청원에 대한 별 다른 언급 없이 곧장 성폭력처벌법으로 논의를 건너뛰었다. A4 용지 62쪽 분량의 속기록에서 ‘n번방’ 이라는 말은 고작 두 차례 등장한다. 일부 참석자는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n번방 사건은 이것(딥페이크)과는 조금 다른 형태 아닌가”라고 의문을 표시했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10만명 이상이 참여한 국회 1호 청원은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지도, 제대로 입법되지도 않은 채 폐기됐다. 입법 담당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법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엔 n번방 사건 관련 내용은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회는 보도자료를 내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고 홍보했다. 책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낳은 입법 실패였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지원단체 ‘프로젝트 리셋’을 비롯한 여성 단체들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법 개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인 박사가 검거되는 등 사건이 전국적 관심을 끌고서야 국회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민주당은 23일 긴급간담회를 열어 “총선을 치르고 국회를 다시 소집하는 한이 있어도 ‘n번방 사건 재발방지 3법(△성적 촬영물 협박 가중처벌 △불법촬영물 다운로드 행위 처벌 △불법촬영물 방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처벌)’을 임기 내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텔레그램 n번방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을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제안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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