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원 권고에도 생계 위해 개원 강행도
입시학원 강사도 월급 절반 뚝
“분신처럼 여기던 바이올린이지만 일단 이거라고 팔아야 할 거 같아요.”
서울 성북구에서 바이올린 학원을 운영하는 김다은(가명ㆍ34)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80명 가까운 수강생이 전부 그만두면서 20년간 잠시도 곁에서 떼놓은 적 없는 바이올린 처분까지 고민할 만큼 절박한 처지에 몰렸다. 김씨는 “지난달 학원 선생님 8명 중 6명을 내보내고 임대료와 밀린 월급을 주려고 대출까지 받았는데 지금은 매출이 제로라 대출금 갚기도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경영난이 극심해진 영세 예체능학원들이 줄폐업 위기에 놓였다. 강습 과정에서 대면 접촉이 불가피한 특성상 직격탄을 맞았다. 벼랑 끝으로 몰리다 보니 정부의 연이은 ‘휴원 권고’에도 더는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며 문을 여는 학원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23일 학원가에 따르면 영세 예체능학원 상당수가 폐원을 검토할 정도로 혹독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이달에 한 푼도 벌지 못했다. 매출 ‘0원’은 미술학원 운영 1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김씨는 “영세학원은 임대료 등을 전적으로 수강생 회비로 충당하는데 6주째 수강생을 받지 못하면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예체능학원을 비롯해 영세학원을 지원한다며 연 2% 금리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특례보증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학원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수입이 아예 없는 상황이다 보니 되레 빚 부담만 늘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태권도 수강생이 원래 120명이었는데 지금 한 달 넘게 휴원하면서 3,000만원가량을 손해 본 상황인데 여기서 저리 대출을 받는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했다.
정작 영세업자를 위한 대출상품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출을 받으려면 지난해보다 매출이 줄어든 걸 입증해야 한다. 서울 양천구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B씨는 “학원은 종합소득세 신고를 매년 6월에 일괄적으로 하는데 학원 문을 2018년말 열어 지난해 소득 신고를 하지 못했다”며 “당장 돈이 없어 정부대출을 신청했는데도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중ㆍ고등학교 입시학원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부분 계약직인 입시학원 강사들은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데 최근 수강생이 줄면서 월급이 반 토막 난 강사들이 쏟아진다는 게 학원가의 설명이다. 성북구의 한 단과학원 원장은 “잇따른 휴원 권고 등으로 수강생이 30% 가까이 줄면서 강사들 월급도 절반 가까이 감축했다”고 말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정규직 교직원을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라고 해 논란이 있었는데 강사들 사이에선 ‘우린 일 안 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그룹’이란 자조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정부의 ‘휴원’ 권고에도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문을 여는 학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학 영세 입시학원 원장은 “정부의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내달 5일까지 14일간 운영을 중단해 달라고 학원들에 요청했다. 현장 점검을 통해 휴업 권고를 어긴 사실이 확인되면 강력 제재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학원총연합회는 “더 이상의 휴원은 예방책이 될 수 없다”며 “전국 345개 지부가 방역상태를 확인한 뒤 실시간 방역상황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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