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필 전 한라산등산학교 교장 ‘한라산과 50년’
강산 다섯 번 변했을 시간 ‘한라산은 훼손으로 변해’
3월 24일, 한라산 국립공원 지정 50주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수준이 그 시간만큼 성장했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찾아온 봄. 오문필(63) 전 한라산등산학교장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찾아와 느끼고 가는 것까지는 좋으나, 비정상적이고 무리한 산행을 일삼는 등산객들도 해마다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지정 50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시 곶자왈도립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지으며 또 산악인으로서 ‘한라산 지킴이’로 평생동안 뛰고 있는 인물이다. 한라산은 1970년 3월 24일 우리나라 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가 한라산과 인연을 맺은 것도 중학교 2학년 때로, 그 즈음이다. 처음으로 정상까지 올랐지만, 안개가 끼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던 찰라, 갑자기 안개가 물러가고 백록담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는 “그 순간의 황홀함이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고, 그 크기도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컸다”며 “그 날 이후 한라산은 내가 꼭 지켜주고 싶은 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틈이 날 때마다 정상에 올라 한라산의 안부를 살피곤 했다.
5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다섯 번은 변했을 시간. 그에 따르면 한라산도 많이 변했다. 오씨는 “국립공원 지정에도 불구하고 자연보호에 대한 개념이 없다시피 하던 70년대, 한라산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됐다”며 “일부는 복원됐지만, 한 번 파괴된 자연을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강산의 변화는 결국 훼손됐다는 이야기다.
훼손으로 생긴 대표적인 변화는 구상나무 군락. 우리나라에만 있는 상록교목으로 한라산을 비롯, 지리산과 덕유산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수종이다. 오씨는 “70년대 당시 도내 고등학교에서는 가을이 되면 2박3일 일정으로 한라산 등반을 하면서 윗세오름 대피소 주변에서 야영을 했다”며 “밤이 되면 학생들이 추위 때문에 구상나무 가지를 꺾어 불을 피웠고, 결국 대피소 주변 구상나무들이 상당수가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구상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적색목록 멸종 위기종으로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가 눈 감기 전에 5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뿐만 아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라산 철쭉제가 백록담 안에서 열렸다. 그는 “어느 해인가 7만5,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백록담 주변 훼손이 심해졌다”며 “결국 철쭉제가 백록담에서 윗세오름 대피소로, 다시 어리목 광장으로 바뀌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라산은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시작으로,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09년 세계지질공원 인증 등으로 우리가 보존ㆍ보호해야 할 세계적인 유산으로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하고 있지만, 수준 이하의 일부 탐방객들로 한라산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산 정상에 올라 마시는 ‘정상주’를 비롯해 흡연, 음식섭취,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난 비코스 등반 등 산에서 지켜야 할 상식들이 무시하는 등반객들이 부지기수에요. 지금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등산객들을 보는 것은 큰 고역입니다.”
제주도가 한라산을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던 2005년 새로운 등산문화 조성을 위해 한라산등산학교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안전한 등산, 등반을 위한 각종 기술 교육에 관심이 있어 오는 이들이었다”며 “하지만 그보다는 등산(반)동 중에 지켜야 할 상식과 예절 교육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15기, 300명이 수료했다.
그는 현재 6년간의 학교장 생활에서 물러난 뒤에는 청소년과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오름탐방 등을 운영하는 ‘청소년캠프’, 일반 도민이 참여하는 생태문화기행 등을 통해 올바른 산악문화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0년 전 한라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가 되묻는다. “산 정상 몇 개 오르는 게, 또 몇 시간 만에 거기에 오르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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