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취소와 위약금 청구가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문 닫는 건 시간 문제네요.”
1993년부터 줄곧 수출에만 전념해 왔던 한 영세 무역업체 대표인 전모씨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30여년 넘게 한우물만 파온 그에게 남은 건 폐업뿐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에서 빚어진 희생양으로 보였다.
초읽기에 들어간 그의 ‘파산일기’는 지난해 말부터 쓰여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순전히 발품만으로 창업 이후 최대 규모인 총 700만장의 보건용 마스크 해외 수출 계약을 따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올해 초부터 불거진 코로나19 사태에 국내 마스크 공급이 충분하다고 큰소리쳤던 정부에서 지난달 말 서둘러 국내 마스크 수출을 전면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달 초 첫 선적을 앞둔 전씨에겐 청천벽력에 가까웠다.
후폭풍도 몰아쳤다. 최근엔 동남아의 한 대형 항공사와 체결한 500만개 수출 계약부터 취소됐다. 마스크 50만개를 보내기로 했던 다른 기업도 이달 30일까지 마스크 3,000개를 우선 선적하지 않을 경우엔 계약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알려왔다. 이곳에 보내기로 했던 수억 원의 마스크 대금은 이미 제조업체에게 완납한 상태다. 또 다른 기업에선 이달 내 일부 물량을 안 보내면 50만달러의 위약금 청구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전씨는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해외 대기업들과 분쟁을 벌여 승산이 있겠느냐”며 망연자실했다.
국내 마스크 대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하게 취해진 정부의 통제에 공감이 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책적 사각지대에 자리했다는 이유로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단 점이다.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단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영세한 마스크 수출 기업은 스스로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무언의 정부 메시지에 동의하긴 어렵다. “지금 이 상황에 수출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며 “거래선들과 끈이 끊어지지 않는 선에서 방법을 찾아달라”는 전씨의 항변이 무리일까. 지금까지 정부 기관에 발이 닳도록 찾아가 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단다.
“수출이 정 불가능하다면 정부가 최소한 배상 대책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저 ‘나 몰라라’ 하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앉아서 망하라는 겁니까.”
‘30년 무역상’의 애타는 호소에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윤태석 산업부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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