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의료장비 비축’ 6개국만 참여
미국 ‘45분 진단키트’ 긴급 허가
“여긴 더 이상 제1세계가 아니다. 전쟁 상황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사만다 곤살레스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의료장비 부족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일로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스크와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 부족 사태가 심각해진 것은 물론 그 여파로 경증환자의 검사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전 세계적 ‘마스크 대란’은 이미 현실이 됐다. 특히 방역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들을 보호할 의료장비가 부족한 게 문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2일 “미국 연방정부가 의료진 보호를 위해 마스크 수억 개를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의류업체 헤인스는 미 연방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보건용 마스크 600만개를 매주 공급하기로 했고, 3Mㆍ허니웰 등 미국의 주요 마스크 제조사들도 생산량을 늘렸다.
하지만 마스크가 필요한 현장에 제때 공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NYT는 의료장비 생산 업체 관계자들을 인용해 “실제 생산 증대까지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 현 상황을 전시로 규정해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발동하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난 시장에 개입하는 성향이 아니다”며 한 발 물러서자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장비 공급 문제로 사분오열 상태다. 독일과 프랑스가 국외 유출 방지를 명분으로 마스크ㆍ장갑 등 필수 의료장비 수출을 제한하자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EU 내에서조차 원조 요구를 무시한다”며 공개 비난했다. EU는 뒤늦게 의료장비 공동 조달ㆍ비축 계획을 세웠지만 최근까지도 동참 의사를 밝힌 나라는 27개 회원국 중 6개뿐이다.
의료진 보호 장비 공급은 코로나19 방역의 시작이랄 수 있는 진단ㆍ검사 문제와 직결된다. NYT는 “마스크 부족 사태가 검사나 진단을 늦추는 ‘병목 현상’을 유발하고 있다”며 “최근 뉴욕ㆍ캘리포니아 등이 경증 환자에 대한 진단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미 식품의약국(FDA)이 45분 내에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키트 판매를 긴급 허가한 건 희소식이다. 하지만 “원하는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트럼프 대통령), “모두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보건당국) 등 미국 내 혼선은 여전하다.
진단 여력이 달리는 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EU옵저버는 “한국의 경험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대규모 진단과 접촉자 추적이 필수임을 보여주지만 유럽은 진단키트 자체가 부족한데다, 일부 국가는 무증상자는 검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누적 검사자 수가 31만명을 넘었지만, 상황이 훨씬 심각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각각 15만명, 3만명 수준이다. 최근 열흘 새 확진자가 10배 이상 늘어난 프랑스도 일일 검사 건수가 2,500건 정도에 불과하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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