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항공편 있는 伊에 2대 예고 ‘최후의 수단’ 원칙 무너져
필리핀ㆍ중남미 등서도 요구… 판단 기준 모호ㆍ비용도 문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피해 귀국하려는 재외 국민과 여행객의 전세기(임시 항공편) 수요가 증가하자 외교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재외 국민을 포함한 국민 보호는 헌법상 정부의 의무이지만, ‘정부 전세기를 보내 달라’는 요구에 일일이 호응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이다.
외교부 원칙은 “전세기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현지 민간 항공편이 있으면 자력 귀국을 우선 유도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전세기를 투입한 것은 중국 우한과 일본 요코하마(크루즈선), 이란 등 세 차례다. 우한은 민간 항공편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고, 이란과 요코하마 크루즈선의 경우 항공편이 없진 않았지만 자력 귀국하기 어려운 특수한 상황이라고 외교부는 판단했다.
이 같은 원칙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교부는 민간 항공편이 살아 있는 이탈리아에도 전세기 2대를 띄우기로 했다. 현지 한인회가 국내 항공사와 교섭을 벌였으나, 항공사에서 난색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22일 “감염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 조력 없이 승객을 태우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항공사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보증하는 검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도 전세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을 연결하는 직항편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선 교민과 유학생 등 최소 1만여명이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경을 걸어 잠근 중ㆍ남미와 유럽 등에도 정부 전세기를 보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지 항공편이 있어도 전세기 투입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22일 “현지 항공편이 있으면 전세기 투입은 자제한다는 기존 원칙은 유효하다”면서도 “각국 상황이 다른 만큼 그때그때 종합적인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선 비용 문제도 부담이다. 정부 전세기는 편도로 운영된다. 항공사는 통상 왕복을 기준으로 항공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전세기 전체 운임의 절반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 일본 크루즈선 내 교민을 데려오기 위해 정부가 대통령 전용기(공군 3호기)를 띄웠던 이유 중 하나도 운임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전세기 운용을 위해 올해 새로 배정된 ‘재외국민 긴급지원비’ 10억원은 이미 소진됐다. 외교부가 전세기 투입을 위한 특별 예산을 따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세기 투입과 관련한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1월 공포된 영사조력법에는 “해외 위난 상황 발생 시 전세기를 투입한다”고 돼 있을 뿐 ‘해외 위난’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외교부 전세기 운영지침에도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라고만 돼 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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