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경기장 건설 중 집단감염… 당국, 열악한 환경 ‘나몰라라’
“단체 숙소에서 수천 명이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니 ‘사회적 격리’는 말할 것도 없고 수돗물도 세정제도 없으니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하겠나.”
이주노동자 인권보호 단체에서 일하는 바니 사라스와티는 카타르 내 이주노동자들의 격리 실태를 이렇게 고발했다. 현재 카타르에는 2022년 개최 예정인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십만 명이 단체 숙소 등에 격리돼 있다. 이들 단체 숙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탓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간) “카타르 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집단 격리돼 있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좁은 방에는 보통 8~10명의 남성이 함께 머물고 있고 공용 주방과 화장실의 위생 상태도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현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하지만 침구를 정리하거나 벌레를 잡기 위해 스프레이를 뿌리는 정도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탄식했다.
카타르 보건당국은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의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이란 점을 들어 이들의 단체 숙소를 아예 격리시켰다. 지난 11일 확인된 신규 확진자 238명이 모두 같은 이주인력 단체 숙소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였고, 이후 닷새간 이 곳에서 113명이 추가로 감염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거주 시설의 환경ㆍ위생 상태가 지극히 열악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근본적인 대책은 외면한 채 자국민과의 접촉만을 막는 편의주의적인 발상인데다 이주 노동자들 간 집단감염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에서다. 실제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감염된 이들은 대부분 서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북아프리카 출신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현재 카타르 인구 290만명 중 외국인 노동자는 무려 200만명(69%)에 달할 정도다. 저렴한 비용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카타르 보건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가디언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물ㆍ음식ㆍ마스크ㆍ손세정제가 정기적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들 입장에선 격리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한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는 “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팔의 이주전문가는 “이주노동자들은 네팔의 경제적 영웅과도 같다”며 “그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국가에 타격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는 비단 카타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ㆍ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 등 걸프지역 인근 국가들에도 이런 이주노동자 단체 숙소가 흔하다. 현재 바레인에서도 8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열악한 시설에 격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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