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이동제한 명령, 유럽ㆍ美 일부 사실상 선거 어려워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해외 체류 재외국민은 큰 걱정 없이 투표할 수 있었다. 대사관ㆍ총영사관 등 각 공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면 투표함은 봉인된 뒤 외교행낭으로 한국으로 전달됐고 개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국적기 직항 노선이 있는 공관 77곳에서는 바로 직항편으로 한국에 투표함을 보냈고, 그렇지 못한 98개 공관은 ‘허브공관’ 21곳을 경유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무사히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4ㆍ15 총선이 다가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해외 체류 유권자의 투표권을 위협하고 있다. 각 국의 국내 이동 제한 명령 조치로 투표를 하러 가는 것도 어려워진 데다, 투표함이 한국까지 무사히 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재외국민 중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17만여명은 각 공관에 마련된 투표소 205곳에서 다음달 1~6일 중 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에서는 이동 제한 명령 위반 시 벌금 부과안까지 발표됐고, 코로나19 감염 우려까지 겹쳐 투표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표를 행사해도 한국까지 전달할 길이 녹록지 않은 상태다. 이전 선거의 경우 직항 노선이 있는 공관에서는 곧바로 외교행낭을 통해 투표함을 부쳤고, 직항이 없는 경우는 외교관이 투표함을 직항이 있는 ‘허브공관’까지 이송했다. 투표함은 반드시 사람이 직접 옮겨야 했고, 교체나 분실을 막기 위해 2인 1조로 움직였다. 문제는 항공 노선 운항 중단ㆍ축소로 싱가포르, 토론토, 시드니, 뉴욕, 로스앤젤레스, 두바이, 프랑크푸르트, 파리, 방콕 등에 있는 기존 허브공관이 과거처럼은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각 나라마다 외국인 전면 입국 금지나 특정 국가 체류자 입국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 투표함을 허브공관까지 운송하는 영사 인력 이동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24~27일 선거관 교육을 받기 위해 입국했던 203명의 재외선거관 중 2명이 한국 방문자 현지 입국 금지 조치 때문에 본래 근무지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을 정도다. 투표함 이송 시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입국 후 14일간 의무적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나라의 경우 투표함을 이송한 인력은 복귀 후에도 격리를 감수해야 한다. 영사 인력이 소수인 공관이라면 업무 차질도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재외선거 사무를 중지하거나 일정을 축소하는 지역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는 1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재외선거를 중지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선거를 이틀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후로도 각국의 이동 제한 지역과 기간이 늘어나면서 외교부는 23일 재외공관에 선거 진행이 가능한 상황인지 평가해 보고하라는 지침을 보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진 유럽 국가와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는 선거 진행이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르면 이번 주 중 재외선거 중지ㆍ축소 지역이 추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국제특송(EMS) 방식의 투표함 회송이나, 현지 공관에서 개표하는 방법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지 개표를 한다면 해당 공관에 있는 재외투표관리관이나 사무원 인력을 투입하는 식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선관위의 최종결정을 받겠지만, 현지 공관에서 개표해 그 결과를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컨틴전시 플랜까지 나와있다”며 “다만 어느 공관에서 어떻게 할지 아직 판단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항공 노선 중단이나 국경 봉쇄 선언으로 입ㆍ출국 자체가 막히는 국가도 생길 수 있는 만큼 선관위는 투표가 마무리 된 다음에 투표함 회송ㆍ개표 방안을 정할 예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각국이 방역 대책으로 도시 봉쇄나 이동 제한을 하는 것까지 선관위가 관여할 수는 없는 만큼 재외국민의 실질적인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불가항력적인 사정으로 선거사무를 중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재외국민 투표권을 보장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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