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전이돼 상황은 더 암울해져
최악에 대비하고, 총력전으로 맞서야
사회적 지지 강화로 빠른 회복 도모해야
출근길마다 보게 되는 동네 풍경 하나. 문을 열지도 않은 약국 앞에 족히 20m 이상 줄을 서 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동네 사람들 표정이 마스크 위 눈가에 선명하다. 평소 집안에 마스크를 쌓아두든지 기름처럼 정부가 전략물자로 비축해 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봤다.
세계의 위기가 된 신종 코로나 사태는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우리 사회, 나아가 전 지구적 차원의 행동요령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2003년 중화권에서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을 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김문식 전 국립보건원장(현재의 질병관리본부장 지위)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사태 전개를 보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보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과한 대응”이 실제로 과했는지 여부는 엄청난 지역감염에 고통받는 대구가 말해 주는 바이지만, 논란이 됐던 중국 봉쇄가 이루어졌다 해도 신종 코로나의 놀라운 전염성에 비춰 뚫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대통령의 섣부른 낙관론, 마스크 같은 보급 투쟁 실패, 뒷북 대응 비판이 있었지만, 중국은 물론 주요 의료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확진자 사망률은 빠르고 광범위한 우리의 진단체계가 인명 피해를 줄이는 탁월한 대응 조치인 점을 말해 준다. 경증 단계에서 환자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감염이 불러온 사회적 충격으로 볼 때 정부가 얼마나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상상력을 발휘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꺼려하는 전사’로 불렸던 걸프전 영웅 콜린 파월 전 미국 합참의장의 전쟁론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많은 걸 시사한다. ‘압도적 전력으로 신속하게 적을 박살내야 한다’는 전쟁관이다. 신속하게 끝내지 못한다면 젊은 병사들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이므로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는 그의 전쟁관을 장기전이 된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입해 보면 국내외적으로 뼈 아프다.
보건 위기가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전이돼 상황이 크게 암울해진 점에서 그렇다. 감염 우려에 따른 이동 제한과 시민의 공포로 각 나라가 문을 걸어 잠그면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소비 위축, 신용 경색 등 세계화 시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는 세계 증시, 특히 한국의 불안정한 금융시장은 이번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급이 될지, 1997년 외환위기급이 될지를 가늠해 보는 듯해 걱정스럽다.
나서기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제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뉴욕 증시가 곤두박질치고, 덩달아 아시아 유럽은 경기를 일으켜 위기감은 더 커진다. 곳곳에서 곡성이 들린다. 코로나 사태 두 달 만에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몰락이 시작됐다. 직접 타격을 받은 항공 여행 정유업계는 무급휴직,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쓰러지는 기업도 나올 것이다. ‘시간과 치료약 개발만이 경제 위기의 특효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위기 종식의 시기를 예단하기 어렵고, 큰 사회적 상흔을 남길 게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상상 이상의 것을 대비하는지 모르겠다. 경제 위기의 ‘신천지’ ‘요양시설’이 드러나는 순간엔 이미 늦다. 물론 정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대량 실직 사태로 깊은 상처를 남긴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 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극복했다. 유엔의 세계 행복리포트에 따르면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국민 행복감의 중요 요소이며, 그 사례로 금융위기 당시 우리의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를 높게 평가했다. 코로나 위기가 짧고 굵게 끝날 태풍이 아니라 장마가 될지라도 기업이 사람을 함부로 자르기보다, 함께 갈 방도를 먼저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주변을 돌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사회적 지지가 강할수록 회복도 빠르다는 게 유엔 행복리포트의 결론이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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