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작심 비판 “‘트럼프 팬데믹’으로 명명해야”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진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CUNY) 교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을 믿지 말라”며 트럼프의 미온적 대처 탓에 감염병이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르렀다고 작심 비판했다. 한국의 신속ㆍ정확한 코로나19 대응을 거론하면서 ‘트럼프 책임론’을 제기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19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매우 느리고 부적절했다”며 “대통령은 위협을 과소평가하면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기고문 주제부터 눈길을 끈다. 그는 ‘트럼프 팬데믹(pandemicㆍ세계적 대유행)에서의 세 가지 규칙’이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논지를 풀어냈다.
우선 트럼프가 줄곧 사용하는 ‘중국 바이러스’ 용어와 관련, “자신의 실책을 가리기 위해 인종주의적 책임 전가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코로나19에 별명을 붙여야 한다면 차라리 ‘트럼프 팬데믹’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19 처리를 비교해 보라”고 했다. 두 나라 모두 1월 20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는데, 왜 미국만 감염병 확산세가 꺾이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는 “한국에서 29만명을 진단ㆍ검사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6만명만 검사를 받았다”며 트럼프가 최대 치적으로 꼽는 미국의 주가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서 눈을 돌렸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초기 판단이 한국과의 차이를 낳은 결정적 원인이라는 구체적 증언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전날 공중보건 전문가들을 인용, “미 정부는 확진자가 발생하자 관행대로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준비한 시험 진단키트에 의존했는데, 일부에서 결함이 발견된 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식품의약국(FDA) 조사 절차를 고수했다”고 전했다. 한국처럼 발병 초기에 민간부문을 활용했다면 바이러스가 이렇게 퍼지는 일은 없었을 거란 진단이다. 미 보건당국은 발병 5주가 지난 지난달 29일에서야 CDC 외 진단키트 사용을 승인했다. 통신은 “한국과 미국의 조치는 완전히 대조적”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얼마나 많은 자국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됐는지, 어디서 발병이 심각한지를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결론적으로 트럼프 팬데믹에 대처하려면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곤경(hardship)’ 자체에 집중하고 △일자리 인센티브에 대해 걱정하지 말며 △트럼프를 믿지 말라고 제안했다. 그의 말마따나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처참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기준 확진자 수는 1만3,000명을 돌파했다. 9일 만에 확진자 규모가 13배 폭증했다.
미 시사주간 타임도 이날 트럼프가 재선을 위해 외국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건 당국자들이 1월 중순부터 코로나19의 위험을 대통령에게 경고했지만 질병의 심각성을 경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14일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 역시 미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는 문재인 행정부와 다르게 코로나19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미국은 절대 한국의 대응을 따라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트럼프의 판단 실패가 미국발 팬데믹 참사를 부른 핵심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