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못 다 이룬 꿈을 제자와 후배들이 이뤄냈다.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라.’ 지난해 고인이 된 원로 조각가 김행신 전남대 명예교수가 품었을 뜻을, 제자들은 헤아렸고 이내 흙으로 빚어냈다. 100년 전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다 열여덟 나이에 옥사한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동상(銅像)을 통해서다.
김대길ㆍ박정용 전남대 미술학과 교수 제작팀은 최근 높이 4m 폭 1.8m 크기의 대형 유관순 열사 동상 제작을 위한 점토 원형 제작을 마무리했다고 20일 밝혔다. 제작팀은 이 점토 원형을 토대로 만든 브론즈 틀에 구리를 녹여 붓는 주물성형작업을 거쳐 동상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 동상은 5월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인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 세워진다.
애초 이 동상 제작 작업에 손을 댄 사람은 김 명예교수였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해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와 유관순 순국 100돌을 맞는 2020년 작품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김 명예교수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별세하면서 동상 제작 계획이 틀어졌다. 이에 김 명예교수의 딸이자 전남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시내 조각가가 아버지의 제자인 김대길 교수와 대책을 상의했다. 김 조각가는 “아버지가 하시던 작업이 완성됐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 김대길, 박정용 교수 등이 스승이자 선배의 뜻을 이어가기로 했다. 스승과 후학들은 그렇게 하나가 돼 작년 말부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재개했다. 이번 작업엔 전남대에서 활동 중인 박형오ㆍ윤종호 강사, 대학원생, 학부생들도 손을 보탰다. 고증은 복식 전문가인 양숙향 순천대 교수와 이태호 명지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동상 원형은 맨발의 유 열사가 오른손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흔드는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비장한 얼굴 표정은 독립을 향한 유 열사의 의지를 담아냈다. 1920년 9월 숨이 끊어지던 순간까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 열사의 강인함을 표현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김대길 교수는 “유 열사 동상은 ‘동양의 잔 다르크’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대한독립이라는 굳은 의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며 “무엇보다 스승의 뜻을 이어 후대에 각인되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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