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곡이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클래식에 큰 관심이 없어도 곡을 듣는 순간 “아, 이 곡?”이라며 익숙해할 법하다.
바흐가 1720년 무렵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6개 곡으로 구성됐다. 각 곡은 프렐류드(Prelude) 알르망드(Allemande) 쿠랑트(Courante) 사라반드(Sarabande) 갤런트(Galanteries) 지그(Gigue) 악장들로 꾸며져 있다. 각 악장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춤곡 분위기를 의미한다. 가장 유명한 곡은 뭐니뭐니해도 ‘1번곡의 프렐류드(전주곡)’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첼로곡은 피아노 등 별도의 반주 없이 오로지 첼로 선율로만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화음이 결합돼있어 첼리스트에겐 화음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솔로 선율까지 소화해내야 하는 숙제를 안긴다. 가수로 치면 본인 노래를 부르면서 코러스까지 맡는 방식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려운 곡이다.
덕분에 4개의 현만으로 이 모든 걸 표현해내야 하는 첼리스트의 활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엄청나게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저음을 담당하는 조용한 악기로 치부되기 쉬운 첼로의 반전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첼리스트들에게 “인생의 종착지이자 평생의 과제”로 꼽히는 이유다.
지금도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이 곡에 도전, 자신만의 실력과 색깔을 평가 받는다. 송민제 첼리스트는 “무반주 첼로곡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곡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 떨어져 전체 풍경을 그려보듯 감상하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첼리스트 목해원으로 나오는 배우 박민영이 극 초반에 이 곡을 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학원 교사에게 자신을 실력을 보여주기에 이만한 곡이 없는 것이다.
첼리스트의 성서라는 이 곡에도 사연은 있다. 작곡 당시 이 곡은 그다지 인기 없었던 듯 잊혀졌다. 1890년 무렵 13살짜리 소년 첼리스트가 헌 책방에서 이 악보를 발견, 10년 넘게 이 곡을 연구한 끝에 20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이 곡을 세상에 알렸다. 이 소년이 바로 ‘20세기 첼로 성인’이라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다. 오늘날 우리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카잘스 덕분이다.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엔 바흐의 첼로곡 외에도 현악기 선율이 종종 등장한다. 그 중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목해원이 시골로 내려온 뒤 달밤 아래 길을 걸을 때 깔리는 배경음악이 좋다. 정중한 음악감독이 작곡한 ‘겨울소리’다. 피아노와 첼로 화음이 왠지 모를 슬픔을 간직한 듯한 여주인공의 심리를 나타내준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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