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제 중의 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에 따라 사상 처음 여름으로 연기된다. 세계 영화제 중심 역할을 하는 칸영화제가 일정을 옮김에 따라 세계 영화계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칸영화제는 19일 오후(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전 세계적 건강 위기의 시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코로나19 희생자들에게 가 있고, 우리는 그 질병에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감을 표현한다”며 “5월 12~23일 열릴 예정이던 제73회 영화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영화제는 “다양한 옵션을 고려 중인데, 6월말부터 7월초에 여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덧붙였다. 칸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 또는 취소설이 강하게 나돌았으나 경쟁부문 초청작 등을 발표하는 4월 15일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비춰왔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9,000명을 넘어서고 정부가 이동금지령을 내리는 등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전격적으로 연기 발표를 했다. 칸영화제가 연기되기는 1946년 영화제가 첫 개최된 이후 처음이다. 영화제 초창기였던 1948년과 1950년 재정 문제로 아예 열리지 못했고, 1968년엔 68혁명의 영향으로 중단된 적은 있다.
칸영화제의 연기로 세계 주요 영화제들도 정상적인 개최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 감독의 신작이 칸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후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7월 열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10월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등의 상영작에 큰 변동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산업적 영향도 크다. 칸영화제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예술영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마케팅 기회로 여겨져 왔다. 칸영화제가 연기됨에 따라 출품 예정작들의 개봉 시기도 전면 조정될 상황이다. 칸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칸필름마켓도 연기되면서 세계 영화산업 전반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상반기 열리는 칸필름마켓은 하반기의 아메리칸필름마켓과 함께 세계 2대 필름마켓으로 꼽힌다. 지난해 칸필름마켓에는 1만2,527명이 참여해 영화 4,000편에 대한 거래 상담이 오갔다.
칸영화제가 연기로 당장 발등의 불은 껐지만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칸영화제는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미국 감독 스파이크 리를 흑인 최초로 지명하는 등 야심 찬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한국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키면서 올해 칸영화제에 대한 주목도가 어느 해보다 높았다. 올해 한국 영화계는 30편 가량이 칸영화제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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