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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본다, 어린이] 코로나19에도 나보다 더 작고 약한 존재를 떠올려봅시다

입력
2020.03.20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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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2>시드니 스미스의 ‘괜찮을거야’

책읽는곰 제공
책읽는곰 제공

유년기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돌이켜보면 일화가 아닌, 몇 가지의 이미지와 감각적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 살 때 키우는 강아지와 이별했던 밤은 옆으로 돌아누운 몸, 울어서 잘 쉬어지지 않던 숨, 가까이 바라보던 벽지의 노란 무늬로 기억된다. 학교에 늦어 선생님에게 크게 혼났던 어떤 날은 비에 젖어 꿀쩍거리던 운동화의 느낌으로 남아 있다. 우리 삶의 장소와 길들은 대개 지도처럼 명확한 기호가 아닌, 감각적 체험으로 재구성된 것들로 기억된다. 이러한 이미지들, 감각적 경험들을 담은 작품은 때로 어떤 유려한 언어적 스토리텔링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드니 스미스의 ‘괜찮을 거야’ (Small In The City)는 대도시의 겨울 풍경을, 주인공 어린이의 마음 길을 따라가는 감각적 체험으로 재구성해낸 작은 단편 영화와도 같은 그림책이다. 독자는 도심 한복판, 거대 빌딩 사이를 걷는 어린이를 따라 대도시의 곳곳을 어린이의 시점으로 탐색하는 경험을 한다. 구아슈(고무를 수채화 그림물감에 섞어 불투명 효과를 내는 회화 기법)로 그려낸 붓의 느낌과 겨울 도시를 그려낸 색채감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서적 변화를 독자에게 섬세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있잖아, 내 말 좀 들어 볼래?”

책읽는곰 제공
책읽는곰 제공

책 속 여정을 따라 함께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너’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아이는 사실 홀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에서 어린이 자신보다도 더 작은 몸을 가진, ‘너’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작은 존재인 자신이 파악한 대도시에서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쉴 수 있으며, 때로 먹을 것도 찾을 수 있는, 그리하여 빠르게 안전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중이다.

무서운 개의 짖는 소리, 송풍구의 따뜻하고 냄새 나는 바람, 거리의 음악소리, 털이 걸리는 덤불 등은 어린이가 생각하는 ‘작은 몸을 가진’ 존재들이 도시를 느끼는 방식이며, 동시에 어린이의 마음 길을 구성하는 감각적 체험들이다.

여정의 막바지에 도달하면서 아이가 말을 걸고 있는 ‘너’가 사실은 잃어버린 고양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애써 차분히 위로하는 아이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도시는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뒤덮인다. 아이와 독자의 마음이 모두 먹먹해지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다행스럽게도 ‘괜찮을 거야’ 라며 어린이와 독자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알아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괜찮을 거야

시드니 스미스 지음ㆍ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발행ㆍ40쪽ㆍ1만3,000원

‘괜찮을 거야’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주인공 어린이의 체험으로 재구성된 겨울날 대도시의 풍경이 사실은 이 도시를 헤매고 있을 또 다른 작은 몸-고양이-의 체험을 가정한 것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작은 몸’ 으로서 고양이에게 공감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감각을 상세하게 안내한다. 독자는 작품 속에 그려진 어떤 눈 오는 날의 풍경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작고 나약한 존재들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공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대도시의 빌딩 숲만큼이나 거대한 재난 상황 속에서 이 도시의 작고 나약한 존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쉽게 자기 연민이나 방어적 사고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지만 거친 시공간을 살아가는 작은 존재의 감각으로 섬세하게 이 세계를 느껴보고, 안전한 길로 안내하며 ‘괜찮을 거야’ 라고 위로하는, 성숙한 동료 시민이 되어볼 시간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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