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X’는 도미니카계 미국인 여성 청소년 화자가 수십 편의 일기 같은 시로 소수자인 자신의 존재와 일상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시 소설’이다. 이 책의 시들은 한 편의 독립적인 시이지만 한 편의 소설처럼 이야기가 연결되고 진행된다. 시 외에도 글쓰기 과제물, 친구와의 대화,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 일상의 다양한 텍스트가 이민 가정 여성 청소년의 삶을 모자이크처럼 보여준다. 책 시작부터 끝까지 소설처럼 이야기가 흐르고, 이 이야기를 자기 고백 장르인 시로서 여과 없이 솔직하게 말하니, 소설과 시를 동시에 읽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소녀의 일상 고백이라 해서, 왠지 따듯하고 달콤하고 상큼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런 편견은 무너지는 편이 낫다. 소녀의 일상은 전쟁이다. 시대와 동떨어진 종교 제도와 교리, 데이트를 통제하며 순결을 강요하는 어머니, “있다고 해서 부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아버지, 어느 장소에서 무얼 해도 따라붙는 성추행… 제각각으로 다가오는 폭력과 억압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여성 청소년의 꿈과 자유, 특히 몸에 가해지는 억압.

그러나 소녀의 이름인 시오마라(Xiomara)가 ‘전쟁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자’이듯 소녀는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전투 의지이자 전장의 무기는 바로 시 쓰기. 쓰는 행위를 통해 시오마라는 자기 자신을 찾고 말하는 용기를 얻는다. 초고와 제출본이 늘 달랐던 글쓰기 과제물은 시 경연대회 이후 드디어 하나로 합쳐진다. 시인인 소녀에게 자신을 가두고 숨기는 비밀 일기장은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X는 주인공 소녀 이름의 첫 알파벳이자, 폭력과 억압에 대한 거부이자, 누구든 X의 자리에 올 수 있다고 독자에게 건네는 초대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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