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기를 동원한 정부의 ‘이란 교민 귀국 작전’은 험악한 중동 정세와 국적기 운항 경험 등을 치밀하게 고려한 결과였다. 특히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망을 어떻게 회피하느냐가 이번 교민 귀국 작전 추진의 관건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9일 외교부, 항공업계,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이란에 있는 교민 74명과 이들의 가족(이란 국적자) 6명 등 80명을 태운 이란항공 전세기가 18일 밤(현지시간)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을 이륙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도착했다. 이들은 간단한 검역을 거친 후 활주로에서 아시아나항공 정부 전세기로 갈아타고 두바이 국제공항을 출발,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외교부는 이란 교민 귀국을 위해 이란 수도 테헤란으로 직접 전세기를 투입해 곧장 귀국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에 따라 국내 항공사에 테헤란 행 전세기 운항을 요청했다. 그러나 항공사 측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인천-테헤란 여객기 직항 노선을 운항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이란 상대 금융제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이란 제재와 관련해 제3국 기업이나 개인이 이란 업체와 거래할 경우 미국과의 금융 거래를 금지하도록 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국적기가 테헤란에 들어갈 경우 현지에서 급유도 해야 하고, 공항 사용료 등을 지불해야 한다”며 “이 경우 미국 제재에 저촉될 여지가 큰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란 직항 운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외교부는 중동 내 제3국 경유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경유지로 낙점된 나라는 UAE. UAE는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국가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관계가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UAE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탓에 이란발(發) 여행객 입국을 막고 있는 대다수 중동 국가와 달리 두바이 환승은 허용하는 등 비교적 입국 제한 수준이 높지 않았다. 한국과 외교적으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UAE 정부의 배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진단ㆍ수송용 키트 5만여개를 UAE에 긴급 수출하는 등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협력 수준도 높이고 있었다.
이란 교민 귀국을 위한 전세기는 애초 지난주 투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란 측과의 협의가 막판 난항을 겪으면서 지연됐다. 일각에선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중동 지역 내 대표적 친미국가인 UAE 간 민감한 관계가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한 정부가 지난 1월 호르무즈해협에 사실상의 독자 파병을 결정했던 터라 이에 대한 이란 측의 불편한 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다각도 노력 끝에 이란 교민 수송 문제를 해결해냈다. 외교 소식통은 “전세기 지연은 미국의 제재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최근 이란 정부 내 업무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 커 보인다”고 전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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