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년 전, 스물여섯의 대학강사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2달 안에 죽는다”고 했다. 병명은 대장암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다 그는 밀양에 있는 작은 절로 들어갔다.
그는 절밥을 먹고, 경내를 산책하며 죽음을 준비했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부산에서 지어온 한약을 복용했다. 한약은 믿기지 않겠지만, 스님의 대변을 가져가 다른 약재와 섞어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한 달간의 절 생활과 5달의 투병 끝에 기적이 일어났다. 대장암이 완치된 것이다.
요컨대, 43년 전 의학계는 그에게 ‘치료약’이라는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으나 그분은 정답 없이 살아남았다. 답지에는 답을 쓰지 못했지만, 시험을 통과한 셈이다.
코로나19도 아직 정답이 없다. 치료약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치료방법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들 제안들 중에는 이른바 ‘가짜 뉴스’도 상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에 대해 무조건 입막음을 해야 할까?
대구 수성구 효목동 O병원 K원장 대구에 코로나사태가 번지자, 누구보다도 열정을 불태웠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보다 효과적인 치료요법을 찾았고, 특히 중국 우한에서 치료하는 의사들과 SNS 등으로 교신하면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비타민C 대용량요법이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간단한 자체 임상실험을 통해서도 확인을 했다.
그는 이를 대중에게 알리려 했다. 자신의 병원 영업 목적이 아니라, 공포에 떨고 있는 일반 대중에게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의도였다. 그러나 그는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동료 의사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의사가 무책임하게 유포한다”는 힐난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다.
비타민C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성분이다. 그리고 비타민C요법이 면역기능강화를 통해 바이러스나 세균을 극복한다는 사실은 그 동안 수많은 논문에서 이미 입증이 됐다. 특히 중국 우한 당국은 미국에서 건너간 의사들이 처방한 비타민C 대용량요법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를 했고, 중국 일부 지방정부도 치료요법으로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K원장의 주장이 배척받는 이유가 뭘까? 그가 신경과전문의로 해당 전문의가 아니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타민C 요법이 일종의 ‘대체의학’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2007년 3월14일 대한의사협회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 주최로 암과 관련된 대체의학의 4가지 요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이때 비타민C 고용량요법이 발표됐다. 여기에 참여한 한국 측의 의사는 암 치료에서 가장 우선시되고 주된(main) 방법은 반드시 '현대의학'이 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비타민C와 관련해서는 “비타민C는 값싸고 부작용이 없어 안전하며 여러 가지 증상 호전과 항암치료시 부작용을 예방하여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냈다. 적어도 위험한 치료법은 아니라는 소견이었다.
요컨대, 비타민C가 정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치 ‘가짜’처럼 규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절로 떠났던 그분처럼, 시도해볼 만한 것들의 총합이 ‘정답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요긴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연구가 깊어져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진 뒤에 비타민C를 오답 처리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정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단정을 내리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동료 의사들이 K씨에게 보인 행동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순수한 열정을 무시하기에는 지금껏 비타민C가 우리에게 끼친 효용이 크고, 대뜸 ‘가짜 뉴스’라는 낙인을 찍어 뒷전으로 치워버려야 할 만큼 전혀 위험하지도 않다.
나침반과 삼각돛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이미 오래 전 존재했던 것들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대서양 어딘가에 세상의 끝이 있으며 그곳으로 가면 죽는다는 미신을 극복한 도전 정신과 용기였다. 코로나19라는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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