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유가에 울고 유가에 웃고 있다. 유가가 내리면 기업이나 가계의 비용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경기위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터라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등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6.1% 떨어진 26.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28.7달러)에 이어 연 이틀 급락세를 보이며 2016년 2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주저앉은 것이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배럴당 50달러를 웃돌았던 WTI시세는 이로서 약 한 달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이날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4.4% 내린 배럴당 28.73달러에 거래됐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통하던 배럴당 30달러가 깨지자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16일(현지시간) 뉴욕 3대 증시가 11~12% 곤두박질 친 데에도 국제유가 하락이 한 몫을 했다. 지난 9일 세계 증시가 일제히 주저 앉은 것도 앞서 WTI 가격이 장중 30% 이상 폭락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유가 폭락은 기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낮춰 경제활동 유인을 훼손시킨다. 즉 유가 하락은 곧 경기침체의 신호로 투자심리 역시 급격하게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국내 주가 하락을 이끈 외국인 매도 역시 유가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유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가 하락의 원인인 산유국들의 각자증산을 통한 ‘치킨게임’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7일 올해 1분기 WTI가 배럴당 22달러, 브렌트유는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 하향 조정이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연구원은 “현재 원유 소비량 감소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JP모간체이스도 WTI가 오는 6월까지 배럴당 24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는 원유를 기초 자산으로 삼는 파생결합증권(DLS)이 대규모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유 DLS는 유가가 일정 가격 범위 내에 있으면 약정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만 기준가의 50% 밑으로 떨어지면 만기 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생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원금손실구간(Knock in·녹인)에 진입한 DLS 규모는 약 3,000억원 이상이다. 유가 폭락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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