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판사님 감사합니다. 딸과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4년 전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초등학생 딸과 살고 있는 베트남 이주여성 부모(41)씨는 18일 법원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접했다. 국내 체류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은 법무부 출입국 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겼다는 낭보였다. 부씨 모녀를 돌보고 있는 이주여성쉼터 관계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부씨가 일자리 얻기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체류기간이 연장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참 고마운 일”이라며 기뻐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이성율 판사는 이날 부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체류기간 연장 불허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출입국 당국은 2018년 10월 “혼인의 진정성이 결여돼 있고, (이혼에 대한) 남편의 귀책 사유가 불명확하다”면서 부씨의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본보 2019년 7월 11일자), 이 판사는 출입국 당국의 조치를 재량권 남용과 사실 오인으로 판단했다.
부씨처럼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결혼이민(F-6) 체류 자격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인과 혼인 관계가 성립된 외국인(F-6-1) 및 한국인과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F-6-2), 배우자의 사망ㆍ실종으로 ‘자신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 유지가 불가능한 경우(F-6-3)로 나뉜다.
한국인 남편과 재혼했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린 부씨의 경우, 이혼과 함께 ‘혼인단절’(F-6-3) 비자를 받은 뒤 베트남에서 낳긴 했어도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딸을 한국에서 키우려 했다. 하지만 출입국 당국은 부씨와 남편 A씨의 이혼 책임이 부씨에게도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부씨는 소송 과정에서 A씨가 딸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일삼는 녹음파일을 제출했다. 그러나 출입국 당국은 부씨가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 머문 것에 대해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쉼터에 입소하는 등 세 차례나 쉼터에 들어가 정상적인 혼인생활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면서 A씨가 이혼 소송 과정에서 제기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폭언이 담긴 녹음파일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A씨 감정을 자극하거나 화를 부추기는 언행을 한 뒤 욕설이나 폭언을 유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씨의 녹음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증거로 쓰일 수 없다고도 했다.
이 판사는 그러나 “A씨의 폭언과 욕설이 일상적이고 반복돼 부씨 모녀가 커다란 고통을 지속적으로 겪었고, 고통이 누적돼 혼인관계가 파탄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혼의 귀책 사유는 A씨에게 있다”고도 했다.
부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원곡의 유승희 변호사는 “부씨가 한국인이었다면 녹음파일만으로도 가정폭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라며 “한국인 부부에게 적용되는 판례가 결혼이주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유 변호사는 이어 “부씨가 하루 속히 정상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출입국 당국이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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