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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한국 기독교 ‘구약 코로나’에 감염… ‘원조 예수’로 돌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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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한국 기독교 ‘구약 코로나’에 감염… ‘원조 예수’로 돌아와야”

입력
2020.03.19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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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입니다’ 펴낸 철학자 김용옥, 인터뷰서 교회 비판]

신천지 공격하는 교회도 우상화 변질

헌금ㆍ출석 강요 ‘천박한 유대교’일뿐

이웃 안전 아랑곳없이 예배 강행은

상식을 상실한 한국 기독교의 비극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17일 본보 인터뷰에서 "교회도 종교도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예수의 가르침"이라며 "여전히 한국 교회는 권위를 내세워 교인에게 복속을 강요하는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한 기자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17일 본보 인터뷰에서 "교회도 종교도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예수의 가르침"이라며 "여전히 한국 교회는 권위를 내세워 교인에게 복속을 강요하는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한 기자

“지금 한국 기독교는 ‘구약(舊約) 코로나’에 감염돼 이성이 마비된 상태입니다. 예수가 중계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약(新約), 즉 ‘사랑의 계약’으로 돌아가야 해요. 편협한 유대인의 종족신을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 신으로 모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가 그러라고 한 적도 없고요.”

17일 서울 동숭동 출판사 ‘통나무’ 사옥에서 만난 철학자 도올 김용옥(72)의 비판은 신랄했다. 한국 기독교계가 교인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도올에 따르면 그건 신약 성경, 즉 복음서를 제대로 읽은 목회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성서를 도외시한 채 교조화한 조직 신앙에만 매몰돼 예수의 사상과 실천 가운데 일부 파편만 남은 설교를 목사끼리 서로 복제만 하는 게 지금 한국 기독교의 남루한 형편이라고 꾸짖었다.

도올은 원래 신학자를 꿈꿨다. 1967년 서울 수유리 한국신학대에 수석 입학했다. 최근 그는 ‘나는 예수입니다’를 펴냈다. 지금껏 교회가 강조해 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실제 예수의 삶과 진면목을 복원하고자 시도한 전기다. 책에서 그는 예수가 베들레헴(다윗의 고향)이 아닌 갈릴리 태생이라는 사실 등 후세 교회가 덧칠한 예수의 신성(神性)을 걷어내며 그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도올이 다시 그려내는 예수는 민중운동가이자 혁신가이며 무엇보다 휴머니스트다. 가난하거나 병든 자,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등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이 예수의 우선 관심 대상이었고, 그렇기에 예수가 가장 중시한 계명은 “이웃을 하나님처럼 사랑하라”였다. 도올은 이웃 안전에 아랑곳없이 예배를 강행하고, 그걸 신성한 것인 양 포장하는 기독교인들을 두고 “상식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게 한국 기독교의 비극”이라 탄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문제로 정부가 그렇게 말렸건만, 일부 교회들은 예배를 강행했다.

“이성을 마비시킨 광신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바이러스 창궐은 인간에게 삶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요구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얼마나 썩어빠진 종교에 감염돼 살고 있는지 드러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사악한 ‘구약 코로나’에 감염돼 이성이 마비돼 버렸다. 종교적 행위도 얼마든지 합리적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협조하는 게 사랑이고, 사랑이 종교의 정신 아니냐. 그런 상식을 거부할 정도의 광신이다. 그릇된 판단을 확신하고 그게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미친 나라다.”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인가.

“옛날 유대교 구약 율법의 토대는 착취였다. 사랑의 계약이 아니라 저주ㆍ질투ㆍ배타ㆍ억압의 계약이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절대 약자다. 유대민족 신인 여호와는 ‘나 말고는 어떤 신도 섬겨서는 안 된다’거나 ‘안식일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갑질’이다. 예수는 이런 구약을 새롭게 바꾼다. 바로 신약이다. 한국 기독교의 기반은 신약인데, 여전히 구약의 하나님을 모신다. 목사는 구약 율법에 따라 설교한다.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라기보다 천박한 형태의 유대교다.”

-주일 예배에 집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

“유대인의 안식일은 계율을 상징한다. 율법상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경찰이 딱지를 떼도 안 된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배가 고파 밀이삭을 훑어 먹는 제자들을 보고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는 선언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거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나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라고까지 한다. 유대교의 여호와를 부정한 거다. 일요일에 교회에 갔다 오는 것도 좋다. 다만 성서적 권위나 근거는 없다. 교회 내부의 합의일 뿐이다. 코로나19 시대라면, 가령 북한산에 가서 예배하는 것도 괜찮다.”

-‘믿으면 구원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예수는 자기를 믿으라 한 적이 없다. 기적을 행한 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한다. 그 때 믿음이란 내적인 거다. 자기의 잠재력,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만들면서 ‘예수가 메시아 그리스도이자 부활자이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라는 식으로 바뀌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의 구원이 없다’고 한 뒤 교회가 우상화됐다. 믿음이 맹신으로, 난센스로 변질된 셈이다.”

-한국 교회는 특히 권위적이란 지적이 있다.

“예수에게 하늘과 땅은 하나다. 둘이 아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이 우리에게 전한 기독교는 하늘과 땅을 완전히 분리한다.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같은 이는 ‘하늘은 땅과 섞일 수 없다.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게 하늘이고 인간은 하나님에게 복속돼야 하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예수가 말하지 않은, 그런 구약적 질서가 한국에서 계속 널리 퍼진 것이다. 교회로서는 권위를 내세워야 구원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새로운 종교 운동이 태동해야 한다.”

본보와 인터뷰 중인 도올 김용옥. 배우한 기자
본보와 인터뷰 중인 도올 김용옥. 배우한 기자

한국 기독교에는 토착적인 기복(祈福) 신앙적 요소가 많다는 질문에 도올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빨갱이 문화’와 관계가 있다는 게 비극”이라고 했다. “6ㆍ25 전쟁 이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민중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게 현세적 신앙이에요. 제주도에 왜 기독교인이 많겠어요. 여순민중항쟁이나 제주4ㆍ3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들어보면 이유 없이 그냥 막 쏴 죽이는 통에 공포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해요. 교회에라도 가서 매달려야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교회에 가면 빨갱이로 몰릴 염려도 없었죠.” ‘좌빨(좌익 빨갱이)’을 빙자한 국가 폭력의 참혹한 역사가 한국 교회 급성장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기독교계가 신천지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비슷한 사람과 싸울 때 화를 더 많이 내는 법이다. 계속 교인을 빼내 가던 신천지가 기성 교단은 무섭고 미웠을 거다. 그러나 신천지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건 세습을 일삼고 헌금, 교회 출석을 강요하는 대형 교회들이었다.”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천지를 매도하고 계보를 뒤져봐야 소용 없다. 원조 예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를 바로 알고, 그 예수를 자신의 삶의 가치로 내면화시키고, 교회 바깥에서 생활 속 운동으로 전개해야 한다. ‘나는 예수입니다’는 우리나라 종교 혁명의 씨앗이 되라고 쓴 책이다.”

-제목을 보고 도올이 스스로를 예수라 한 줄 알았다.

“‘예수=그리스도=부활자=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대 교회 사람들의 ‘케리그마’(신념이나 담론)와 대비되는, ‘역사적 예수’의 실상을 1인칭으로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역사적 예수는 인간 예수였다. 복음화된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와 다르다. 인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신성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말은 인간을 신처럼 고귀한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대 교회부터 ‘예수는 하나님 아들’임을 부각하며 인성을 거론하려는 걸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간이 어디 있나. 누구나 ‘나는 예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예수 전기는 독특한 시도다.

“동서 막론하고 1인칭 자기 고백 형식의 예수전(傳)이 쓰인 건 처음일 거다. 예수와 동일시하려면 역사적으로 존재한 예수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철저히 성서신학적으로 접근했지만, 신학자들이 보지 않는 역사적 문건이나 팔레스타인 생활사 자료를 면밀히 살폈다. 그렇다고 월권할 수는 없었다. 예수가 직접 말하는 방식인 만큼 신중했다. 4개 복음의 원전(原典)이자 ‘행위의 복음’인 마가복음이 다룬, 살아 있는 예수의 모습과 행동을 그대로 정직하게 전하려 애썼다.”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무엇보다 유대인이라 단정할 수 없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적 열망에 사로잡힌 적도 없다. 그에게 여호와는 유대인의 종족신일 뿐이었다. 갈릴리 민중의 고통은 오히려 선택과 경배를 강요하는 배타적인 유일신 여호와로부터 오는 거였다. 예수는 본질적 혁명을 꾀한 ‘천국운동가’였다. 천국이라는 게 나라 개념이 아니다. 희랍어 ‘바실레이아’에는 ‘질서’라는 의미도 있다. 억압하고 죽이고 미워하고 착취하는 인간의 질서 대신 ‘하나님의 질서’를 이 땅에 구현한다는 게 천국운동의 목표였다.”

-지금 우리에게 역사적 예수가 갖는 의미는.

“‘메타노이아’, 즉 생각의 변화다. 새로운 세상이 오려면 인간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회개’는 잘못된 번역이다. 예수는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아이와 여자에게 보인 당시로서는 혁명적 태도 역시 그런 인간관에서 비롯됐다. 반면 멀쩡한 사람을 병자로 만든 뒤 약을 주는 게 지금의 기독교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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