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인류 발전의 차이를 분석하며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 특징을 이렇게 기술했다. 수렵채집사회나 화전민 같은 소규모 무리사회에서는 ‘대중성 질병(crowd disease)’이 존재할 수 없는데 농업ㆍ도시의 발생과 함께 인구집단이 조밀해지면서 전염병이 자주 퍼졌다는 것이다.
“세균들에게 또 하나의 행운은 세계 교역로의 발달이었다. 로마 시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가 효과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세균 번식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천연두가 ‘안토니우스병’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도달했고 165~180년 수백만 로마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오늘날에는 제트기가 있어 인간의 전염병이 지속되는 시간이면 제아무리 긴 대륙 간 항로라 하더라도 충분히 날아갈 수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유라시아의 바이러스가 남ㆍ북아메리카로 퍼져 미시시피강 유역 인디언과 멕시코 아즈텍문명 등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고 본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전염병 발생 시 쇄국 필요성의 논거가 됐다.
실제로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확인되고 비행기로 3시간 거리 한국까지 도달하는 데는 1, 2개월이면 충분했다. 이탈리아와 이란 등 전세계로 확산되는 시간도 비슷했다.
세계가 연결된 만큼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왜 대문을 활짝 열어놓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를 외치던 이들은 ‘무조건 중국 차단’이 최선이라고 외쳐댔다. 하지만 중국 노선부터 끊었던 이탈리아의 방역 실패 사례를 보더니 이제는 입을 닫는다.
아무리 특정 국가 발(發) 입국을 제한한다 해도 다른 나라를 경유해 들어오는 것까지 다 막기는 힘들다. 특정 국가 국민만 입국을 막는 조치의 외교ㆍ경제 부담도 크다. 방역에 절대적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전염병 확산 속도를 늦추는 전략은 수 차례 전염병 팬데믹을 겪으며 확립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조였다. 확진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확산은 최소화하며, 치료는 신속히 한다는 한국의 원칙은 전세계 방역 모델이 됐다.
한국식 검역 기조인 특별입국절차 역시 처음엔 뭇매를 맞았다. 자기 몸 상태의 거짓신고 가능성 등 이 조치에도 허술한 대목은 있다. 그러나 코로나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코로나19의 무한 확산은 제어했고, 관리 효과도 분명했다.
일본의 얄팍한 수도 우리는 우아한 대처로 눌렀다. 그들이 한국 입국자 14일 자가격리라는 강수를 택했는데도 우리는 특별입국절차 추가로 맞섰고,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설파했던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다만 정부 대응 중 아쉬웠던 대목도 여럿 있었다. BBC 인터뷰 후 칭찬이 쏟아지고 있기는 하나 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투박한 조치’ 발언은 아쉬웠다.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한다”는 말은 사실에 가까워도 외교적 언사는 아니었다.
한중 입국 통계,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 브리핑 등에서 잇따라 오류를 범하며 정부의 방역 신뢰도를 깎아먹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과잉 홍보 전략도 문제였다. 해외언론에서 쏟아지는 한국 모델을 본받자는 말에 도취하는 분위기도 그렇다.
칭찬에 어깨 으쓱해 할 사람은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헌신하는 의료진, 검역ㆍ방역 실무자, 국민이면 충분하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의 방심은 다시 나라를 나락으로 내모는 일이다. 오버하지 말자. 오바마 여사의 말을 빌린다면 ‘그들이 치켜세울 때 우리는 차분하게 가자’.
정상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orn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