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넋 놓고 바라보는 게 전부네요.”
주부 박모(50)씨의 아들 A(17)군은 서울맹학교 ‘이료반’에 다니는 중증 시각장애 학생이다. 이료반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공통교육과정 외에도 안마와 혈자리, 병리, 진단처럼 현장실습이 필요한 과목을 추가로 배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A군은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 비장애 학생들은 학원과 각종 홈러닝(Home Learning)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공백을 메운다지만 장애 학생을 위한 콘텐츠는 온ㆍ오프라인을 통틀어 두 손으로 꼽는 수준이다. 박씨는 18일 “비장애 학생들은 학원이라도 갈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무 데도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며 “개학이 더 미뤄져 걱정이 태산”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상 첫 ‘4월 개학’에 특수학교 장애인 학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장애 학생들이 긴 교육 공백을 겪고 있는데도 대체 교육안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장애 학생들에게 홈러닝은 먼 이야기다. 교육 당국이 개학 연기 기간에 시청하도록 권유하는 EBS 영상강의조차 시ㆍ청각장애 학생들에겐 장벽이 높다. 시각장애인용 점역(점자로 변환) EBS 교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교재를 제외하고는 아직 시중에 배포되지 않았다. EBS 강의 동영상 역시 자막을 제공하는 것은 소수이고, 수어 통역이 삽입된 동영상은 더 적다. 강복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외협력이사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용 EBS 교재는 6월쯤에나 받을 수 있다”면서 “보고 듣는 것이 수업의 기본인데, 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교재도 없이 듣기만 해서 어떻게 학습이 되겠냐”고 토로했다.
학원의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휠체어를 타고 등원할 수 있도록 전용 엘리베이터나 출입 시스템을 마련한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 장애 학생을 위한 강사나 학습 자료도 준비돼 있지 않다. 강 이사는 “장애 학생들을 학원에 보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기존에도 컸던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간 수능 점수 격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대체 교육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특수교육원 에듀에이블 사이트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콘텐츠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게 학부모들의 이야기다. 박씨는 “교육부는 시ㆍ청각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 학생들의 특성과 학년별 수준을 고려해 명확한 콘텐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EBS 등 국내 모든 학생들에게 공개되는 교육 콘텐츠가 이런 기준에 따라 제작될 수 있도록 여건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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