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몇 백 명씩 늘어나던 확진자가 두 자릿수로 줄어들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옅어진다. 얼마 전 수십 명 단위로 증가할 때도 가슴이 콩알 같이 쪼그라들던 것을 생각하면 감소하는 추세가 마음의 주름을 좀 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고 나면 폭락하는 세계 각국 주식시장의 숫자가 어깨를 짓누른다. ‘쇼크’와 ‘위기’의 경제가 우리를 또 다른 공포로 몰아넣는다.
돌이켜 보면 올해는 벽두부터 계속해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처음 중국에서 원인 모를 폐질환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우리는 바이러스가 두려웠다. 곧바로 거리에서 들려오는 중국어가 두려워졌다. 중국어 쓰는 사람들 모두가 바이러스 전파자로 보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자 대구가 무서워졌다. 대구나 경북을 방문했다가 감염될까 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옮겨 올까 봐. 이내 신천지가 두려워졌다. 또 정부가 방역에 실패하지 않을까 무서웠다. 이제는 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가 공포스럽다.
이들 각종 두려움의 원천은 사실 한 가지, 무지(無知)다.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이 무엇인지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불확실할 때 우리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공포가 심해지면 공황(panic)이 될 수 있고 공황이 한 사회에서 단기간에 폭발하면 집단적 공황이 된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우체국과 하나로마트, 약국 앞에서 긴 줄을 서며 느꼈던 것, 현재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형마트 싹쓸이도 집단적 공황의 전초 단계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1938년 어느 날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화성인의 지구 침공 소식을 알리는 긴급 뉴스가 터져 나왔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나중에 영화 ‘시민 케인’으로 유명해지는 감독 오슨 웰스가 라디오 드라마 ‘세계의 전쟁’을 만들면서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뉴스 형식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뉴저지 일부 지역에서 라디오를 듣고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또는 어딘지도 모르는 안전지대를 찾기 위해 몰려 다니며 곳곳에서 소동이 발생했다. 다음 날 뉴욕타임스가 1면 머릿기사로 ‘라디오 드라마로 인해 공황 발생’을 실을 정도였다.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먼저 지목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고조되던 국제 긴장이었다. 전운이 감도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해진 주민들이 라디오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화성인 침공’ 뉴스를 접하고는 ‘독일 침공’으로 오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불안한 현실과 충격적인 (허위)정보가 결합하면서 순식간에 한 사회를 집단적 공황에 빠뜨렸던 것으로 분석됐다. 불확실한 위기 상황에서 무지가 공포로, 집단적 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화성인의 침공 소식을 듣고 공황에 빠진 주민들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채 생존 확률이 높은 곳으로 질주할 뿐이다.
짙뿌옇게 내려앉은 공기에 바이러스가 깔려 있는 듯 한데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어김없이 우리의 무지를 악용하려는 세력들이 등장한다. 감정을 자극하고 공포를 조장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다수를 움직이려고 한다. 이제 곧 선거와 관련된 말과 글이 여기저기 넘쳐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임을 명심하자. 목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감정에 절절이 호소하면 일단 의심하자. 사실의 몇 가지 조각만으로 전체를 재단하려는 것들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공포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무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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