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여지책으로 직접 마스크 제작
과거 유산 재봉틀까지 소환
“엄마, 갑자기 웬 재봉틀이야.”
지난 16일 직장인 김성진(31)씨는 퇴근 뒤 집 안에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지는 ‘두두두두’ 소리에 깜짝 놀랐다.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재봉틀(일명 전동미싱)의 박음질 소리였다. 김씨 어머니는 벽장 한 켠에 보관했던 재봉틀을 꺼내 한 땀 한 땀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취미로 어린 자녀들의 여름 옷을 만들어주곤 했던 어머니는 20년 만에 재봉틀을 꺼냈다.
한달 가까이 주말에도 약국을 돌며 백방으로 마스크를 구하는 자녀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마스크 필터 원단인 멜트 블로운(Melt Blown) 부직포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들 몰래 주문에 성공했다. 김씨는 “면 마스크에다 갈아 끼울 수 있는 필터 여러 장까지 맞춰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부른 ‘마스크 대란’이 집 안 구석에 처박아둔 재봉틀을 다시 불러냈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어도 마스크가 부족한 이들은 궁여지책으로 직접 마스크 제작에 나서고 있다.
17일 서울 등 수도권 일대 공방과 문화센터 등에 따르면 외출 자제로 전체 수강생 숫자는 감소했지만 마스크 제작을 위해 간단한 기술을 배우려는 신규 수강생은 증가 추세다. 이전 DIY(Do It Yourself) 강좌가 홈데코ㆍ의류 만들기 위주였다면 최근엔 마스크 만들기가 대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서울 광진구의 한 재봉틀 공방은 요즘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강 예약이 거의 꽉 찬다. 강사 이소영(46)씨는 “초급반에서는 에코백을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최근엔 마스크 특강으로 변경해 운영 중”이라며 “20대 여성이 많이 찾아와 전체적으로는 수강생이 30%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박모(37)씨는 “아이들 마스크를 직접 만들거나 주변에 수제 마스크를 나눠주려는 고객이 간단한 재봉틀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DIY 마스크는 기초적인 재봉틀 사용법만 배우면 비숙련자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주변에 남는 천과 멜트 블로운 부직포, 귀걸이용 고무줄 정도만 있으면 된다. 화려한 패턴이나 차분한 무늬의 천 등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공방에서는 사용하는 천 재질과 종류에 따라 수강료에 차별을 두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초간단 마스크 만들기’ 등 수제 마스크 제작법이 인기다. 유튜브에서 ‘마스크 만드는 법’을 소개한 동영상 조회 수는 수십만 회에 이른다. 한 유튜버는 누구나 쉽게 마스크 제작이 가능하도록 도안을 블로그에 공개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재봉틀 판매와 중고 거래도 덩달아 활발해졌다. 30년 가까이 재봉업에 종사해온 이상률 SM소잉플라자 대표는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최근 재봉틀 판매가 60% 가까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고가 재봉틀 판매량은 예년과 비슷해도 10만원 이하 저가 제품은 최근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 11일 자원봉사자의 재능기부로 제작한 마스크 3,000장을 취약계층에 전달했다. 서울 강동구와 노원구도 관내 주민들로 구성된 ‘면 마스크 의병단’을 꾸려 어린이집과 복지시설 등에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수제 마스크가 보건용 마스크만큼 방역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은 남아도 청결한 환경에서 제대로 만들면 사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기관의 판단이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성능평가 결과 필터를 넣은 면 마스크는 평균 80~95%의 비말(침방울) 차단 효과를 보였다. KF94보다는 성능이 떨어져도 KF80 보건용 마스크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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