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고전장(古戰場)’이라는 게 있다. 게티스버그(미국), 워털루(벨기에), 세키가하라(일본) 등 3곳으로, 역사적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누가 언제 무슨 근거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해당 지자체들이 절묘한 상술로 연결시켰다. 4년전 이맘때인 2016년 3월19일, 3개국 지자체 관련자들이 세키가하라에 모여 ‘세계 3대 고전장 서밋’을 개최했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했으니 객관성도 확보한 셈이다.
미국 남북전쟁 격전지로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 낸 게티스버그, 불세출의 영웅 나폴레옹의 최후 격전지 워털루에 비해 세키가하라는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 하지만 일본사에는 적잖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 천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쓰나리를 상대로 일전을 벌여 승리한 곳이다. 이로써 일본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260여년 이어지는 에도 막부시대가 열렸다.
장황한듯한 전투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요즘 전세계 상황이 코로나19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우는 전장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소중한 생명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각국이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고군분투중이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격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승패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훗날 차분히 복기해보면 승패의 원인이 나오기 마련이다. 전쟁에 비해 단기승부가 관건인 전투는 다양한 변수와 임기응변이 요구된다. 어쩌면 예측불허 속 코로나 전투에서 승기를 잡을 전략적 힌트를 얻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언급한 전투의 패인으로는 병력과 물자의 절대적 부족(게티스버그전투), 예상치 못한 궂은 날씨(워털루전투), 아군이라 믿었던 자의 배신(세키가하라전투) 등 이 있지만 코로나와 연계시킬 만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은 지휘관의 판단력과 통솔력이 전투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게티스버그전투에서 남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군신(軍神)으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전투능력을 가졌지만, 자만심에 넘친 나머지 적진을 향해 무리한 정면돌파를 한 것이 패인이라는 분석이다. 나폴레옹 역시 지나친 독선으로 능력있는 부하를 신뢰하지 않았다.
세키가하라전투의 패장(敗將) 이시다 미쓰나리는 전투를 이끄는 지휘자로서는 준비가 덜 된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권율 장군을 맞아 졸전 끝에 대패했다. 모난 성격 탓에 임진왜란에서 동고동락했던 가토 기요마사 등 수많은 동료들이 세키가하라에서 등을 돌렸다. 그런 그가 천하통일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며 치밀한 전략, 전술로 맞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과거 경험하지 못한 범 지구적 위기에서 지도자의 판단력과 통솔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로서는 각국 지도자의 코로나 대처방식은 대체로 두 갈래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거나, 큰 병이 아니니 대충 뭉개고 넘어가자는 쪽이다. 전자가 우리나라라면 후자는 일본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발병 초기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다 뒤늦게 적극 행정으로 태세를 변환했다. 당초 일본에 동조하던 미국과 유럽도 코로나 위기를 감지, 적극방역으로 입장 선회중이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림픽 드림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소극적 대처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의 방역방식에 힘이 실리는 듯 하지만 아직은 우쭐할 일은 아니다. 여전히 전시상황인 만큼 승전 선언은 최후까지 미뤄야 한다.
지도자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국민들의 일사불란한 협조다. 향후 추가 집단 발병을 막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만큼 사회적 거리두기도 당분간 지속돼야 한다. 제2의 신천지발 확산사태가 재발하는 일만큼은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게 국민들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게다.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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